▲ 김실 해양소년단 인천연맹장(전 인천시교위 의장)

지금 학교에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고 감히 말도 꺼낼 수도 없지만, 일부지역에서 진보계열 교육감이 선출되기 이전에는 학생지도를 위해 담임이 재량적으로 학생 일기 검사와 소지품 검사를 할 수도 있었다.

70년대 도서지역인 경기도 옹진군 중학교 담임을 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 토요일 일기노트를 제출받아 검사를 하고 월요일에 되돌려 주었다.

일기쓰기를 위한 치밀한 지도와 함께 일기를 써야하는 당위성을 지도했지만 일부 학생들이 면피용으로 담임에게 밉보이기 싫어 보여주기 위한 일기를 쓰면서 하기 싫은 숙제로 보여지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교사와 학생 사이에 놓여있는 소통의 다리로 일기를 통해 학생의 생각, 학교 일과 후 같이 다니는 친구나 동네 이야기 등 끝도 모르는 학생들의 세계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친구와의 다툼이나 말 못하는 속사정도 알 수 있고 ‘아빠가 돈벌러 지방에 가 있다’ ‘엄마가 야단을 쳤다’ ‘할머니가 오셨다’는 등 학생들이 간단하지만 언뜻언뜻 비치는 내용으로 학생의 요즘 생활과 집안에서 있을 만한 고민거리를 알아 학생들에게 다가가 자연스러운 상담이 이루어지고, 격려와 토닥거리며 교사로서 아이와 더불어 가슴을 여는 장이 되기도 했다.

지금도 당시 어린 학생이 이젠 학부형이 된 제자를 만나면 가끔 어머니·아버지 안부를 묻고 자연스럽게 아이를 키우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물론 보여주고 싶지 않은 개인적 사생활을 남에게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에 부끄러운 부분을 지우고 쓰는 일기가 위선적인 태도를 길러준다고 주장하는 일부 교사를 중심으로 한 교원노동단체가 있으나, 일기쓰기 지도는 더 큰 교육적 효과를 가져 오기도 한다.

그날그날 있었던 지난 하루를 반성하는 습관, 잊혔던 과거를 있는 그대로 보관하는 기록으로서의 가치, 문장으로 길지 않지만 매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써보는 글쓰기 훈련 등이 또 다른 개인 발전에 대한 큰 발견과 함께 일과성이 아닌 꾸준한 교사와 학생 사이에 소중한 대화의 장으로 남을 수 있는 소통의 수단으로 귀중한 가치도 있다.

학생의 일기쓰기와 교사로서 교육적인 접근이 일부 교원단체가 학생 개개인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양심의 자유 등 법에 보장된 학생 인권 침해라고 하지만 학생과 교사 사이에 신뢰할 수 있고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허용적 래포(Rapport)가 형성될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될 수도 있고, 요즘 학생 사이에 있을 수 있는 왕따나 학교 폭력 등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좋은 상담의 장이 이루어짐으로써 학생 사이의 민감한 교우관계나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거리에 쉽게 접근할 수 도 있다고 본다.

지금은 학생 지도를 위해 위로부터 내려오는 지침·지시·조례가 있을 뿐 교사로서 학생 개인별 다양성에 따라 학생을 지도할 수 있는 담임 재량권에는 손발을 다 묶어 놓고는 교사에게 수업도 잘하고 학생 세계에서 은밀히 일어나는 왕따·학교폭력까지 책임지라고 강요하고 있다.

조례나 규칙을 하나 더 만들어 학교 현장에 내려보내는 것이 학생지도에 오히려 더 큰 부담을 주고, 상담기록을 위해 의례적으로 ‘공부하는 데 어려움이 없느냐?’,‘친구와 잘 지내느냐?’는 등 형식적인 상담으로는 학생의 내부 세계를 알 수 없다.

조례·규칙 등은 시시콜콜한 업무 내용과 방식까지 규정하면서 교사의 업무 부담을 늘리고 있으나, 이제까지 교사와 학생 사이에 허용된 분위기속에 이루어지던 스승·제자 사이에 장벽을 만들고 제자를 사랑하는 교사의 교육 재량권까지 박탈하고 있다.

특히 특정 이념 및 교육 지배 구조를 목적으로 하는 일부 편향된 성향의 지역 교육관계 단체 및 지역 정치인들은 조례 제정에 주도적으로 앞장서 결과적으로 교육 조례로 교사와 학생·학부모 사이에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이제 더 이상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이 교육 조례 스트레스에 벗어나 마음껏 학생과 함께 하도록 도와주는 정치, 사회적 분위기가 이루어져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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