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영조 인천전자마이스터고 교장

마르크스(Karl Marx)가 1841년 독일로 와 본 대학의 교수직을 희망했다. 그러나 그는 유태인이라는 것과 재정보증 등의 문제로 교수자리는커녕 핀잔만 당하고 말았다.

그러자 그때부터 마르크스는 공산주의에 가입을 하고 엥겔스(Engels)와 함께 ‘공산주의 선언’을 기초하면서 맹렬한 공산주의가 되었다. 역사에는 ‘만일’이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역사에 만일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해보면, 그래서 그때 마르크스가 본 대학의 교수자리에 취임했거나 혹은 유대인이라고 차별만 받지 않았다면 1848년 영국 런던의 공산주의동맹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며, 공산당선언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6·25전쟁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며, 우리나라 역사도 엄청나게 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마르크스가 본 대학에 취직이 되었느냐 안 되었느냐, 혹은 그가 유태인이라고 차별을 받았느냐, 안 받느냐에 따라 크게는 세계의 역사에서 6·25전쟁이, 더 작게는 오늘 우리 자신의 운명과도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표면에 나타난 어떤 일들은 갑자기 돌출된 우연이 아니라 모두 다 수많은 원인들이 얽혀 일어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파스칼은 팡세에서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도 지구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라는 명언을 남긴 것이다.

생각지도 않는 무심한 일들이 큰 파장을 일으킬 수가 있다. 성경에 “작은 일에 충성하라”는 뜻도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우리가 각자에게 주어진 인생살이를 정성스럽게 살아야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18세기 영국의 귀족이자 저명한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이 세인트 폴 성당을 건축할 때다. 수천 명의 일군들이 일하고 있는 공사장으로 렌은 평상복 차림을 하고 갔다. 여기저기 둘러보던 렌은 채석장에서 돌을 다듬고 있는 인부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땀을 흘리며 일하십니까?” 그러자 인부가 귀찮다는 듯이 대답했다. “다 입에 풀칠하기 위해서외다.” 렌은 또 다른 인부에게 물었다 “지금 무슨 일을 하고 계십니까?” 인부는 대답했다. “5파운드짜리 돌을 다듬고 있소이다.” 렌은 또 다른 인부에게도 물어보았다. “땀 흘리며 무엇을 하십니까?” 세 번째 인부는 대답했다. “거룩한 하나님의 집을 짓고 있습니다.”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세 사람의 목적은 다르다.

그것은 세 사람의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가치관으로 살아가는가? 그 가치관에 따라 하는 일의 정성이 같을 수가 없다. 행복은 결코 소유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바른 인생관, 바른 가치관을 가질 때 오는 것이다.

예전에 구두 가게에서 구두를 골라 사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많은 구두 속에서 어느 것도 내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맘에 들면 너무 가격이 비싸거나 교육자로서 신기에 좀 점잔하지 않고, 싼 것은 디자인도 색깔도 도무지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한참 불평하다가 나오는데, 바로 그 구둣방 앞에서 두 다리가 없이 자동차 타이어 같은 것으로 온몸을 감싸고 노래를 부르며 기어오고 있는 사람을 보았다.

그 순간 내 가슴속에서 양심의 소리를 들었다. ‘두 다리가 없어도 구걸하면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구두가 맘에 드느니 안 드느니 하면서 이 세상과 나 자신에게 한탄하며 불평하다니.’ 그 순간 나는 나 자신도 모르게 구두 사려던 돈을 그 사람의 구걸 바구니에 슬그머니 놓고는 도망치듯이 뛰쳐나와 버렸다.

내가 고등학교 때 선생님 한 분이 수업시간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지나치는 사람일지라도 그의 행복을 간절히 빌어주어라. 그럴 때 너에게 복이 오는 법이다.” 나는 허무함을 무서워한다. 허무가 가슴에 밀려올 때는 내게 아무것도 중요하지도 정성스럽지도 않다.

모든 것을 팽개쳐버리고 싶듯이 귀찮아진다. 의무도, 체면도, 관습도, 다 팽개쳐 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만약 그렇게 내팽개치듯 한 나의 말이나 행동이 나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마르크스의 취직 문제가 6·25전쟁의 원인이 될 수 있었듯이 나비효과처럼 내 말과 행동이 엄청난 사건의 원인에 일조가 될 수 있다는 것. 거기서 나는 지그시 눈을 감고 입술을 물며 탄식처럼 간구한다. “하나님 나를 다스려 주옵소서. 항상 모든 것에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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