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은 정말 지겨우리만치 더웠다. 입추가 지나서도 한밤중에만 예닐곱 번씩 반복되는 열대야가 그칠 줄 모른 탓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불볕 같은 무더위도 계절의 순행을 결코 막을 수는 없고 어느 새 내일이 처서(處暑)란다.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는 시어적 표현을 쓰지 않더라도 자연의 미묘한 변화는 여름이 가고 가을이 드는 것을 바람으로 전한다.

이 무렵 우리네 선조들은 들녘에서 익어 가는 곡식을 바라보며 농쟁기를 씻고 닦아서 둘 채비를 서둘렀다.

또 장마에 젖은 옷가지나 살림살이, 그리고 습기에 눅룩해진 책들을 이때 부는 바람에 맡겼단다. 아울러 누구나 조상님의 산소를 찾아 벌초를 했고 지금도 많은 이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

특히 이 무렵의 날씨는 한 해 농사의 풍흉(豊凶)을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비록 가을의 기운이 왔다고는 하지만 햇살은 여전히 왕성해야 하고 날씨는 쾌청해야만 벼 이삭이 패여 잘 영글 수 있기 때문이다.

처서를 맞으면서 앞으로 농가에서는 오히려 할 일이 더 많아진다. 논물을 조절해야 하고 논두렁의 풀도 베야 하며 집중적으로 벼 병충해 방제와 피뽑기에 참깨 털기, 옥수수 거두기 또 김장용 무·배추 갈기, 논·밭 웃비료 주기 등 여간 많은 게 아니다.

이처럼 처서는 무더위에 지친 우리에게 선선한 바람을 전하며 새로운 활력을 한껏 불어 넣는다. 그런데 아직도 불볕 더위속에 그대로 갇혀 기진맥진하는 참으로 안타까운 이가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다.

자신의 ‘재산 관리인’으로 지목된 처남 이창석 씨가 검찰에 구속되는 꼴을 당하고 차남 재용 씨를 필두로 자신의 전 가족이 줄소환을 당할 처지에 빠져서 말이다.

돈에 옥죈 삶이 팔순을 넘은 나이에 또다시 그를 만신창이로 만든 것은 물론 자식들까지 망가뜨리고 말았다. 생각하면, 그의 삶은 무더위 끝에 가을이 드는 처서의 시원한 바람을 맞기는 했지만 오히려 할 일이 더 많은 농군네들의 부지런함은 전혀 몰랐던 탓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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