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서구 석남동에 살던 고(故) 김익분(75·가명)할머니. 누구보다 가난이 서럽고 원통했을 그의 이야기다. <관련 기사 19면>

유난히 추웠던 지난해 겨울, 김 할머니는 3년 넘게 살아온 반지하 단칸방에서 쫓겨나 거리로 내몰렸다. 세 들어 살던 집이 경매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마땅히 갈 곳이 없어 급하게 살 집을 구해야 했지만 그는 임차보증금 2천500만 원을 단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다. 노인보호시설을 전전하며 자신의 전 재산이나 마찬가지인 임차보증금을 돌려받기 위해 힘겨운 법정 다툼을 벌이던 그는 지난 5월 결국 세상을 떠났다.

현행 주택임대차보호법은 김 할머니와 같은 소액 임차인일 경우 일정 범위에서 최우선 변제받을 수 있도록 보호하고 있다. 따라서 수도권인 인천지역의 경우 6천500만 원 이하 소액 임차인은 2천200만 원 한도에서 다른 담보물권자보다 우선해 변제받을 수 있다.

그러나 김 할머니는 그렇지 못했다.

김 할머니가 살던 곳은 여러 가구가 세 들어 사는 다세대주택으로 지난해 12월 집주인이 저축은행에서 받은 대출금을 갚지 못해 경매로 넘어갔다. 당시 경매 절차를 진행한 법원은 김 할머니에게 다른 담보물권보다 우선해 1천920만 원을 배당하는 것으로 배당표를 작성했다.

그러나 주채권자인 S저축은행에서 김 할머니가 가장(假裝)임차인일 수 있다며 법원에 ‘배당이의 소’를 제기한 것이다. 소가 제기되면 확정 판결 시까지 최소 6개월 이상 배당액을 받을 수 없다.

보증금을 전부 다 돌려받지 못한 것도 억울한데 힘든 소송까지 치러야 했던 김 할머니는 결국 보호시설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 사망한 것이다.

김 할머니는 자신의 보증금을 돌려받기 위해 법률구조공단의 도움을 받아 그동안 살아오면서 모아둔 가스·수도·전기요금과 각종 고지서를 증거로 실거주자임을 증명했지만 소를 제기한 은행은 믿을 수 없다고 맞섰다.

 더욱이 김 할머니는 확정일자와 계약금, 잔금영수증까지 갖고 있었지만 계약 당시 통장거래내역이 없다는 이유로 주채권자인 S저축은행은 그를 가장임차인이라 몰아붙였다.

하지만 법원은 통장거래내역은 없지만 중개업자에게 계약금과 현금을 전달한 영수증이 있고, 실제 거주 사실을 인정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며 S저축은행의 청구를 기각했다.

 김 할머니가 숨진 지 2개월이 지난 7월 24일 판결에서다. 그의 배당금 1천920만 원은 떨어져 지내던 그의 자녀 4명에게 각각 상속됐다.

문제는 이처럼 주택임대차보호법으로도 보호받지 못하는 소액 임차인이 김 할머니만이 아니라는 데 있다. 최근 장기적인 경기 침체로 수익성이 악화된 은행들이 경제적 약자인 소액 임차인을 상대로 ‘배당이의 소’를 남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배당이의의 소=경매 등 강제집행에서 배당을 받게 될 채권자가 배당 순위에 밀려 채권액에 만족하지 못할 경우 다른 채권자를 상대로 이의를 주장하기 위해 제기하는 소(민사집행법 154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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