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가장 중요한 자산은 국민이다. 국민을 피폐해지도록 버려둔다면 아무리 큰 돈도 그 나라의 파멸을 막을 수 없다.” 산업화된 현대 농업의 부작용을 바로잡는 데 생을 바쳐 온 미국의 농부작가이자 환경운동가인 팔순의 웬델 베리(Wendell Berry)가 한 말이다.

그가 살고 있는 미국 땅은 세계 최강의 농업국가가 됐지만 그 이면에는 시장경제의 유입으로 농촌공동체를 파괴하는 고통으로 크게 몸살을 앓고 있다.

산업화된 현대 농업의 부작용을 바로잡는 데 생을 바쳐 온 그의 고민은 아쉽게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공동체 의식의 파괴는 갈수록 더 커지는 구도가 고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공동체 의식의 산실인 한국 농촌도 지금은 예외가 아니다. 본래 우리 사회는 두 축을 가지고 있다. 미국 중심의 시장경제적 도시사회와 촌락공동체적 농촌사회가 그것이다.

이러한 이질적 사회구조를 통해 한편으로는 미국사상이 유입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전통사상이 자리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전통사상보다는 세계화로 포장된 미국사상이 우리 사회를 강하게 짓누르고 있다. 문제는 세계화에 대한 우리들의 태도다.

세계화를 단순한 미국사상으로 이해하지 않고, 우리 것은 버리고 반드시 수용해야 하는 사상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태도가 문제다. 서구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미국사상은 자유와 평등을 기초로 하기 때문에 자유롭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편리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미국사상은 편리해지고 싶어하는 동물적 인간의 본능을 통해 모든 사람들에게 손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결국 편리함만을 추구하려는 사회의식이 편리함에 바탕을 둔 미국사상의 유입을 촉진시키고 있다. 이런 미국사상의 확산은 한국 농촌의 공동체 의식을 해체시켰다.

 사실 지금까지 우리 생활 속에서 전통과 문화를 지켜 주던 것은 공동체 의식이었다. 공동체 의식 때문에 우리의 전통과 문화가 지켜질 수 있었다.

역사적으로 공동체 의식은 농업과 농촌에 의해 유지되고 계승돼 왔다. 옛부터 농촌사회는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전통을 지키고 질서를 존중하는 의식이 강했다.

그 때문에 우리의 전통과 문화는 잘 계승되고 보전됐다. 지금 우리의 전통과 문화가 무너지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 생활 속에서 전통을 지켜주던 농업과 농촌이 멀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농촌 내부에서조차도 비농업적 요소가 침투해 농촌이 비농업화(非農業化)돼 가고 있다. 이런 비농업화는 도시 속에서는 더더욱 심하다. 우리나라 도시는 아직까지도 내면적으로 농업이나 농촌과 깊은 관련이 있다.

농촌에는 부모님과 친·인척이 있고, 또 벗들이 있다. 농촌에서 가꾼 농산물들이 부모님이나 친척을 통해 서울로 올라온다.

하지만 도시민의 생활은 농업적이지도 또 농촌적이지도 않다. 식생활만 봐도 그들은 신선한 농산물 식단보다는 서구적 가공식품을 즐기고, 한식당보다는 레스토랑을 더 많이 찾는다.

여가생활도 마찬가지다. 농촌의 팜스테이보다는 서구화된 놀이공원을 더 많이 찾는다. 이처럼 도시민은 농업·농촌과 깊은 관련을 갖고 있으면서도 생활 자체는 농촌과 멀어져 있다.

사실 미국이 다시 되살리고 싶어하는 중소 농가의 비율이 한국은 66%에 이른다. 대부분 가족농 중심의 생계형 농업이다.

하지만 너나 할 것 없이 농업의 산업화를 부르짖는다. 기계화를 통해 노동중심 농사를 벗어나자면서 대기업의 농업 진출을 허용하고 있다.

물론 피할 수 없는 조류이기는 하나, 자칫하면 웬델 베리의 호소와는 반대로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쉽게 남을 밀쳐 버리는 삭막한 세상을 앞당길지도 모른다.

이는 서로 돕고 의지하는 공동체의 파괴로 이어질 뿐만 아니라, 한국 농촌이 가진 또 하나의 강점을 순식간에 앗아갈 우려도 있다.

 이제는 ‘도시’, ‘농촌’ 할 것 없이 ‘상쟁(相爭)’이 ‘상생(相生)’ 쪽으로 가도록 함께 노력할 때다. “경제적인 잣대로만 모든 것을 가늠하는 순간, 다른 생명들의 고통을 무시하기 쉽다”라고 말한 웬델 베리의 충고를 되새겨봐야 할 때다.

그리하여 농촌의 ‘공동체 의식’을 새롭게 조명하고 무엇보다 공동체 의식을 깨뜨리는 ‘농업의 산업화’를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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