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식 객원논설위원/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

 투표날이다. 엊그제 이틀간 실시된 사전투표는 11%를 상회하는 투표율을 보였다. 전국단위 동시선거의 전례가 없어 이 투표율이 시사하는 바를 정확히 알 수는 없어도 선관위가 내심 기대하고 있던 10% 목표선은 넘은 것으로 다소나마 안도하는 눈치다.

이제 오늘 투표율로써 이 나라의 현재와 향후 4년에 대해 ‘작은 희망’이나마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해서 ‘그래도 투표는 해야 한다’는 말로 서두를 꺼낸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하는 이유를 이렇게 한 인터넷 신문에 실린 칼럼으로 대신한다.

“네 말대로 이건 단순한 해양사고가 아니라 사회적 부조리와 부패가 집약된 살인사건인지 모른다. 먼 바다도 아닌 연안에서, 물이 차오르는 선실의 유리창을 통해 살려 달라고 절규하던 어린 꽃잎들을 수장시켰으니 그 잔상이 떠나지 않는다.

거기에 우리의 자화상이 다 비친다. 무책임한 선장, 예수의 이름을 팔아 돈을 버는 종교, 이익이라면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사업가, 공직을 약탈의 기회로 삼는 공직자.

세월호의 침몰을 ‘공공성’의 침몰로 규정하는 너에게 나는 할 말이 없다. 내가 공공성에 대해 강의할 때, 그게 사회를 받쳐주는 기둥이라고 토론한 적이 있었지.

그때는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원전 비리가 연이어 터지던 때였다. 그 후 국정원의 선거 개입 의혹과 간첩 조작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국가기관이 공공성을 스스로 파괴했는데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지도자들을 너는 이해할 수 없다고도 했다. 그 조직의 수장은 엄벌을 받지 않다가 세월호가 가라앉은 후 ‘사표’를 냈다. 조작된 증거를 법정에 제출했던 검사들은 ‘품위 손상’으로 몇 달 월급을 덜 받거나 한 달 쉬는 것으로 한단다.”

바로 연세대 행정학과 이종수 교수의 칼럼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하기보다 시골로 가서 마을 만들기에 도전해 보겠다는 현우’라는 제자의 울분과 격정의 전화를 받은 뒤 그에 답변하는 편지 형태로 돼 있다. “‘이게 나라입니까’라고 묻는 제자에게”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글 속에는 지성을 갈고 닦는 젊은 제자와 그를 지도하고 있는 교수가 이 나라에 대해 느끼는 절망과 허탈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우리 조상들이 예(禮)와 치(恥)로 사회를 떠받치고 살았다면, 이제는 사회적 공공성으로 나라를 떠받쳐야 하는 거라던 거 말이다. 그게 무너지면 지도층은 썩고, 민초들은 예절을 잃는 법이다. 그 부실 속에서는 사고와 재난이 끊이지 않고, 원망과 보복이 횡행하게 되는 거지.”

이 교수는 제자에게 과거 우리 사회가 공맹(孔孟)의 가르침대로 살았다면, 이제는 우리가 개명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 한 사람으로서 ‘사회적 공공성’을 지주(支柱)로 삼아야 한다고 열띠게 토론하던 어느 날 강의 시간을 상기시킨다. 사회적 공공성을 잃은 나라, 그것이 곧 오늘 우리의 자화상이라는 참담한 지적과 함께.

이 글은 결코 교수가 자기 제자에게 전하는 단순한 편지 구절이 아닐 것이다. 차라리 지금 이 나라에 살고 있는 대통령 이하 모든 국민에게 하는 절규이리라.

“현우야, 전화를 끊으며 네가 그랬지. 결국 우리 사회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없다고. 선장이 승객을 버리고 도망친 것도 개인의 우발적 행동이 아니라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맥락의 발현일 뿐이라고. 네 말대로 임란(壬亂)이 터졌을 때 임금이 백성을 버리고 의주로 도망가고, 6·25전쟁이 터지자 이틀 만에 대통령이 대전으로 몰래 빠져나가 서울 사수를 다짐하는 거짓 녹음을 하고, 세월호 선장은 학생들을 버리고 제일 먼저 도망친 걸 우리가 보았다. 그래서 모두가 ‘우리나라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없다’고 말을 하기도 한다.”

가슴이 막히고 모르는 새 참괴의 눈물이 흐른다. 그러나 이 교수는 일제의 조선 병탐 후 명문가 출신으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만주로 가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경북 안동 출신 독립운동가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선생이 실천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말하면서 칼럼을 끝맺는다.

“현우야, 이제 6월이다. 5월을 아프게 보냈으니, 힘을 내자. 그게 너와 나의 할 일이다.” 이것이 마지막 구절이다. 힘을 내서 6월을 살자는, 그게 너와 나의 할 일이라는 그의 말에서 느껴지듯 이 나라를 이대로 내버릴 수는 없다. 이렇게 칼럼 끝부분에 보이는 작은 희망으로 해서 ‘그래도 투표는 해야 한다’고 서두를 뗀 것이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