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경엽 ㈔글로벌녹색경영연구원 교수 겸 기획본부장

 서아프리카가 진원지라는 에볼라 바이러스 공포가 납량특집 같이 갑작스레 휴가철을 덮치고 있다. 공포를 야기한 내용이 병의 치명적 증상과 전염성이란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막연한 대응책 발표 같은 일치되지 않고 혼란스러운 흐름에 대한 불신이 더 공포를 유발하는 것이라고 본다.

며칠 전 본 영화 ‘혹성탈출-반격의 서막’에선 진화된 유인원들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바이러스로 멸종하다시피한 인간을 지구상에서 몰아내고 평화롭고 안전하게 그들만의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러다 아주 드물게 생존한 몇몇 인간들과 다시 조우하며 인간과 유인원의 전쟁에 들어가게 된다. 주전파와 주화파로 나뉘어 서로 갈등하는 그 영화에서 나오는 가장 많은 단어가 신뢰(Trust)라는 말이었다.

서로 전쟁을 피해가며 각자 서로를 인정하며 살려고 하는 과정에서 양자 모두에게 신뢰감이 최고의 무기였다. 최근 또 하나의 화제작 ‘명량’에서 역시 이순신과 백성 간의 상호 신뢰 문제가 가장 주목받은 핵심 주제처럼 보였다.

수군은 수군대로, 흔히 민초라는 백성은 백성대로 서로 믿고 맡기면서 각자 주어진 역할을 묵묵히 소화해 낸다. 신뢰를 바탕으로 그 어렵고 참담한 여건 속에서 청사에 빛나는 전과를 거두게 된 것이다. 이렇듯 서로에 대한 믿음의 기운이 영화 전편에 내내 묻어 나온다.

장수를 믿는 병사, 병사를 믿는 장군, 초라한 출진이지만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 믿는 백성들, 이 백성들의 고달픔을 가슴에 새겨 가는 모습 등등 그야말로 믿음과 진정성, 신뢰의 이야기다.

신뢰를 얻기까지에는 20년이 걸리지만 잃는 데는 5분도 채 안 걸린다는 말처럼 신뢰는 쌓기도 힘들지만 쌓아 둔 신뢰를 유지하는 일도 힘든 것이다.

이처럼 신뢰는 개인 각자의 철학이자 정체성이 될 수도 있고 장기적·지속적 사회생활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힐 수 있다. 조직이론가 리처드 골렘뷰스키(Richard Golembiewski)는 “개인 간은 물론 조직 간 행동에서 신뢰만큼 강력한 영향을 끼치는 요소는 없다”고 단언했다.

정치·경제·사회가 요동치는 8월, 폭염과 태풍까지 우리의 생활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극악무도한 범죄는 도를 더해 가고 있고, 심지어 나라를 지키라고 아들들을 국가에 믿고 맡긴 군대에서까지 참담한 현상들이 아무렇지 않게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세월호에서부터, 경기불황, 포악무도의 각종 범죄, 사고공화국 등 이제는 시대적 생존법을 터득해야하는 상황까지 밀려 가고 있다.

그러면 이러한 시대적 생존법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출발해야 하는지? 지금 누가 누굴 탓할 여력마저 없으며, 무엇을 먼저 해야 무엇이 바뀌는 그런 순차적 단계마저 없어진 현실이다. 그나마 조심스레 제안을 한다면 사회 전체가 신뢰성을 높이도록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 그나마 옳을 듯하다.

영국 여성 철학자 오노라 오닐은 신뢰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테드(TED)강좌에서 아주 조용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면서 상황적 관점에서의 신뢰 자체가 아닌 신뢰성(Trusrworthy)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즉, 주변으로부터 신뢰성을 가진 사람이 돼야 한다는 뜻이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남에게 먼저 신뢰감을 줄 수 있는 바탕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아무튼 ‘신뢰의 위기’ 시대 그 누구도 믿지 못하는 사회가 된 만큼 그 누구도 이타를 이야기하고 배려와 나눔을 이야기하는 일이 쉽지 않은 그런 사회가 돼 갈 것인지에 대해 고심이 깊어진다.

사회 모든 분야에서 신뢰감과 진정성이 구축돼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치에서의 편 가르기로 나타난 양극화, 세대 갈등, 계층 간 갈등, 승자 독식이 당연시되는 경제의 편향적 이익 추구, 교육의 선행학습 같은 프레임이 절대로 선의의 사회자산화로 이어질 것 같지 않은 막연한 불안감은 바로 이러한 신뢰성에 대한 사회적 대전제가 바탕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모두 누가 먼저를 기대하는 것도 무리다. 그래서 우선 나부터 먼저 신뢰성을 확보하는 신뢰사회로의 회복을 기다리며 실천하고, 새로운 사회 변화를 손꼽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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