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호림 인천대학교 영어교육과 강사

 기업에게 국가가 처한 사회·경제·환경 문제에 경제주체의 한 축으로서 도움을 기대한다는 것은 너무 순진한 발상인지도 모른다.

 1960년대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는 ‘사업보국(事業報國)’을 기업가 정신으로 강조해 기업이 국가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명제를 내걸었다.

그러나 현재의 삼성은 GDP에서 차지하는 매출비중에 비해 세금 납부가 지나치게 적으며, 해외 설비투자에 집중하면서 국내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외면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미국의 경우에도 1929년 사회보장제도와 노동자관련법이 제정되기 전에 이스트만 코닥은 노동자에게 이익 배분, 퇴직상여금과 연금, 그리고 질병수당과 사고보험금을 지급했다. 1914년 헨리 포드는 노동자의 일당을 5달러로 2배나 인상했다.

 그러나 미국 기업의 이러한 일련의 선한 행위는 기업 이익 확대가 그 동기였다. 코닥은 노조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포드는 노동자들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노력이었다.

이와 같이 그 동기가 어떠하든 과거 미국 기업의 좋은 풍토와 윤리는 오늘날 주주가치 극대화라는 절대명제에 갇히게 됐다.

즉, 주주가치의 윤리는 기업에게 이익의 극대화를 요구하지만, 그로 인한 기후변화와 환경 문제의 사회적 비용 부담이 기업에게 요구되는 갈등이 발생하므로 이러한 갈등관계를 조정하고 기업과 국가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국가정책과 사회적 관심에 기업이 참여하는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한 때이다.

이러한 대타협의 실험이 곧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경제 활성화를 위해 기업의 사내유보금이 가계소득으로 선순환돼 소비가 살아나도록 사내유보금에 과세하고, 재정에서 26조 원을 풀며 금리 인하를 정책수단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내유보금의 과세다. 불확실한 투자환경은 선진국 기업의 현금 축적을 현재 최고 수준으로 유지시키고 있다. 따라서 미국 기업은 신규 투자를 하기보다는 주주 이익을 위해 주식시장에서 자사주를 대량 매입하는 데 보유 현금을 사용했다.

2013년 미국 기업은 6천억 달러 이상의 자금으로 자사주 매입을 해 주주에게 높은 배당을 제공했다. 이러한 조치는 주주에게는 이익이 됐지만 자금은 금융시장에서 움직일 뿐, 경제 전체에 혜택이 돌아오지 않을 뿐 아니라 소득불균형 문제를 악화시켰다.

더 심각한 문제는 미국 기업이 해외에서 발생시킨 이익금이 국내로 송금되지 않는 현실이다. 미국의 법인세법은 해외에서 발생한 이익금에도 국내세율(35%)이 추가적으로 부과되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기업이 해외에서 보유한 자금은 약 2조 달러에 달하며, 이로 인해 기업의 재무구조는 왜곡되고 금융비용 부담은 가중됐다. 사정이 이러하자 미국 기업들은 법인세율이 낮은 유럽 국가의 경쟁기업을 인수하고 합병하는 데 보유 해외자금을 할당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미국의 다국적기업들은 해외 기업의 주식 인수를 통해 본사의 법인주소지를 아예 미국에서 해외로 바꾸는 세금도치(tax inversion)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미국세법은 세금 목적으로 법인주소지를 해외로 이전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30년간 미국 기업 50개가 세금도치를 했고, 1990년대 이후 증가 추세에 이르자 미국 행정부는 지난 7월 세법 개정을 의회에 발의해 미국 기업의 해외로의 법인 이전에 대한 원천 봉쇄를 서두르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대통령과 재무부 장관은 ‘합법적인 행위가 곧 옳은 것이 아니라’는 논리로 기업에게 경제적 애국심을 발동시키고 있다.

이 와중에서 정부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았던 투자은행들은 세금납부자들의 눈치를 보며 지난 3년간 10억 달러의 인수합병 자문수수료를 기업들로부터 챙겼다고 한다.

 이러한 세금도치가 향후 10년간 계속되면 연방정부의 조세 감소는 195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므로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신경제정책의 성공을 위해 미국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기업은 이익이 있는 곳이라면 지옥에도 간다는 말이 있다. 국가는 기업에게 투자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우선이지 일방적 애국심 호소와 세금 부과만으로는 기업을 움직일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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