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떤 사회에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12명의 사회과학자들이 나름대로의 답을 내놓았다. 1999년 출간된 「당신은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가?」에서 제시된 사회의 모습은 다양했다. 동일한 사회현상과 사회체계를 바라보는 사회학자들이 말하는 다양한 사회의 정의가 흥미롭다.

마틴 앨브로의 ‘세계사회’,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 다이엘 벨의 ‘후기산업사회’, 랄프 다렌도르프의 ‘시민사회’, 피터 그로스의 ‘다중선택사회’, 빌헬름 하이트마이어의 ‘해체사회’, 클라우스 레게비의 ‘다문화사회’, 아르민 나세히의 ‘기능분화사회’, 클라우스 오페의 ‘노동사회’, 게하르트 슐츠의 ‘체험사회’, 볼프강 벨슈의 ‘가변문화사회’, 헬무트 빌케의 ‘지식사회’, 아미타이 에치오니의 ‘책임사회’, 앤소니 기든스의 ‘근대사회’, 악셀 호네트의 ‘균열사회’, 스테판 라딜의 ‘독신자사회’, 로널드 잉글하트의 ‘포스트모던사회’, 카린 크노르-세티나의 ‘지식사회’, 스콧 래시의 ‘정보사회’, 카를 울리히 마이어의 ‘교육사회’, 레나테 마인츠의 ‘다이내믹사회’, 닐 포스트맨의 ‘미디어사회’, 리처드 세네트의 ‘유연한 사회’, 지안니 바티모의 ‘투명사회’ 등이다.

키워드만 봐도 대충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은 사회를 바라보는 우리의 생각들이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미래 사회는 복잡성의 시대이며, 융합과 초연결성의 시대다. 그 어느 시대보다도 사회현상과 경제현상을 판독할 수 있는 통섭의 지식이 절실한 시대다. 신분제를 기반으로 한 농업사회가 해체되면서 나타난 산업사회 시대도 19세기를 거쳐 20세기를 지나면서 해체의 수순을 밟으면서 전지구적 사회변화가 급변하고 있다.

통상 후기산업사회, 고도기술사회, 고도분화사회 등으로 지칭되는 미래 사회의 모습을 ‘지식’이라는 렌즈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앞에서 언급한 헬무트 빌케와 카린 크노르-세티나는 ‘지식사회’에 초점을 뒀다.

빌케는 1997년 출간된 저서인 「국가의 전망」에서 지식사회의 개념을 제시하면서, 국가정책의 한계를 지적했다. “지식사회는 모든 기능이 지식 의존적이고 새로운 지식의 생산에 의존하는 사회이다.” 그에 따르면 고도로 기술화되고 분화된 사회는 지식사회에 진입된 상태이며, 지식은 건설과 구조와 기업과 조직의 목적 달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상품의 가치는 상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전문지식으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지식은 좀 더 확대 생산되면서 새로운 형태의 성공을 이룰 수 있는 지식 기반 인프라를 건설하게 한다. 특히 빌케는 전지구적인 의사소통의 네트워크를 통해 정치적 행동의 방향을 관찰할 수 있고, 정부의 정치적인 결정을 궁지에 몰 수도 있다고 했다.

요사이 SNS를 통해 전달되는 세월호 사건, 윤 일병 살해사건, 4대강으로 인한 환경문제 등으로 말미암아 국민들은 정부의 정치적 결정에 대해 불신과 심각한 우려를 보내고 있으며, 정부도 이에 대한 해결책 마련에 골머리를 썩고 있다.

“사회학의 대상으로서의 사회는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기 때문에,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지식 틀과 설명 틀로는 이를 따라잡을 수 없다”고 역설한 크노르-세티나는 1999년 출간된 저서인 「인식적 문화」에서 지식사회의 뿌리는 인식활동이라는 특성에 있다고 지적했다. 그녀는 지식사회의 특징으로 지식구조가 학문적 생산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로 침투해 사회조직의 일부가 지식구조로 대체되는 것으로 봤다.

‘집단지성을 활용한 지식보고서’로 정통이 난 ‘트렌즈’지는 전세계 2만여 명의 전문가들이 참여한 미래학 연구지로서 백악관, CIA, 구글, 애플, 바이오브릭스 등 미래 변화에 관심이 많은 그룹들이 구독하고 있다.

‘트렌즈’가 애독되는 이유는 ‘집단지성’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특히 새로운 인천 시대를 열 인천은 ‘집단지성’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시점이다. 지식사회에서 ‘집단지성’의 능력이 발휘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지식을 융합해 낼 수 있는 통찰의 능력이 필수적일 것이다.

통찰은 근시안적 시각과 단선적 사고로는 어림도 없다. 장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시각과 시스템 사고로 무장해 급변하는 세계 정세의 흐름을 파악, 과거·현재·미래를 관통하는 인천의 미래상을 정립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기에 차원이 다른 미래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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