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주년 광복절이다. 광복절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경축하는 날로, 이날이 있기까지는 이 땅을 지키다 돌아가신 수많은 순국선열들의 애환이 담겨져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나라를 사랑하는 애정이 식어가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태극기를 게양하는 가정은 급감하는 대신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은 늘고 있다. 이것은 광복절 날에 드리워진 또 하나의 암운(暗雲)임에 틀림없다.

사실 농업이란 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인류의 역사는 200만 년으로 추정된다. 이 시간의 길이는 46억 년 지구 역사를 우리 신장에 비교할 때 머리카락 한 올 두께 정도 된다.

그런데도 인류는 오늘날의 찬란한 문명을 창조했다. 엘빈 토플러는 인류 역사를 3대 물결로 정의했다. 1만 년 전 농업혁명을 제1의 물결, 18세기 산업혁명을 제2의 물결, 오늘날 정보혁명을 제3의 물결이라 칭했다. 이 세 가지 물결의 공통점은 생산 방식의 혁신을 통해 인간의 삶의 틀을 바꿨다는 데 있다.

산업혁명은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체제, 시민사회를 잉태했고 정보혁명은 기존의 산업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며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가고 있다. 그러나 이 두 물결은 첫 번째 물결이 없었다면 결코 존재하지 못했다.

이처럼 농업혁명은 인류가 문명을 이루고 사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또 인류의 물질문명뿐만 아니라 정신세계의 바탕이 됐으며 생명, 즉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해 줬다. 생명의 여러 가지 기능 중 물질대사는 농업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농업을 통해 생산한 식량이 없다면 인간이라는 생명체는 물질대사를 할 수 없게 돼 자기 자신을 유지할 수 없게 되고 따라서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된다. 이처럼 식량은 인간의 존재를 가능케 하는 물질이므로 식량은 지구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 중의 하나이고, 식량을 생산하는 농업은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산업임에 틀림없다.

아울러 농업혁명은 채집과 수렵에 의존하던 인간이 씨앗을 적절한 시기에 땅에 심고 이를 잘 관리하면 수십 배, 수백 배의 수확이 가능한 것을 이해하고 실행한 것을 의미한다. 농업혁명을 이룬 농사의 비법을 알기까지는 아마 100만 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오랜 시간에 걸친 관찰과 실험이 있었을 것이고, 문자를 비롯한 다양한 정보수단이 필요했을 것이다. 불분명한 의미와 부정확한 정보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낳았을 것이고, 보다 정확한 사실을 얻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됐을 것이다.

이런 고통스럽고 지루한 과정은 혁명이 되기에 충분했다. 인간은 농업혁명을 통해 비로소 오랜 기아와 영양실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식량을 조달하는 데서 오는 위험과 떠돌이 생활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삶과 활발한 종족 번식이 가능했다.

인류가 농업이라는 안정적인 식량 조달 방법을 터득한 것은 불과 1만 년 전이다. 농업의 발생 이래 인류는 농업을 발전시키는 데 전력을 기울여 왔지만, 안정적으로 풍부한 식량을 얻게 된 것은 불과 100년 전의 일이다.

하지만 아직도 식량 부족을 겪고 있는 지역이나 계층이 있다. 세계적으로 40여 개국이 외부의 식량 원조를 필요로 하며, 그들 대부분이 남동부 아프리카 국가들이다.

 따라서 앞으로 식량이 무기가 될 수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계적 지도자들이 한결같이 식량과 농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근대사를 되돌아보면 한때 잘나가던 국가들이 소위 선진국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주저앉은 사례가 많다. 이들 대부분은 농업을 무시한 정책이 그 공통된 원인이었음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농업은 인류가 가진 거의 모든 생명의 역사이다. 현재도 그렇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농업을 망치면 미래가 있을 수 없다. 농업정책은 100년 역사의 미숙한 경제학이 아니라, 농업의 가치에 대한 깊은 이해와 철학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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