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경엽 ㈔글로벌녹색경영연구원 교수 겸 기획본부장

 며칠 전 저녁 뉴스에 강남 어느 아파트 주민이 경비에게 먹는 음식을 던져 주며 사람 이하의 취급을 한 데 분개한 당사자가 분신자살을 시도했다고 한다.

사실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세상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옳은지에 대해 분명한 가치들이 점점 더 퇴색되거나 퇴행적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나만을 위한, 내 가짐만을 위한 철저한 초이기적 세태가 나보다 못하다는 의미에 대해 아무 여과장치 없이 막 보고 막 대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언제부터 우리 사회가 누가 누구에게 그렇게 멸시와 하대를 해도 괜찮은 사회가 돼 버렸는지?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한 책임감 있는 답변을 어디에서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 자기밖에 모르는 초이기가 언젠가는 되돌아오는 부메랑으로 연계될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 말 없는 경고등이 켜지기 시작했고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하다. 자기심리의 방만경영으로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우리 어릴 때 가위바위보 놀이를 하면서 항상 세 번을 해 두 번을 이기면 인정해 주는 그런 3에 대한 여유와 기대가 왠지 마음을 풍성하게 해 줬다.

진 사람도 이긴 사람도 한 번 더 여유를 두고 그렇게 상호작용을 부탁하고 당연히 수용, 허락했다. 천천히 그리고 상대방도 염려하며 그렇게 치열할 수 있는 게임을 세 번까지 순간을 이어가며 대범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얼마 전 몽골 최대 은행 칸 뱅크(Khan Bank) 임원과 지점장을 대상으로 강의를 한 적이 있었다. 지점 경영 그 중, 인사와 조직관리에 대해 이야기하며 지점 모든 직원을 다 관리하려 들지 말고 양쪽에 두 사람을 암묵적으로 마음에 두고, 흔히 우리는 좌청룡 우백호라고 표현하지만 아무튼 그 두 사람을 통해 인사, 조직관리를 해 나가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했다. 물론 그 근거로 필립 짐바르도의 ‘제3의 법칙’을 인용했다.

일일이 공개적, 전부의 동의를 구하는 방향 설정보다는 부분적으로 분위기를 잡아 가고 그러는 가운데 틀을 짜고 기반을 구축하는 일이 바람직하다는 의미로 설명을 했다.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 과학기술의 시대가 이 세계 지성을 리드하고 있을 때, 그는 인류가 제3의 물결에 대해 올바른 자세를 가진다면 새로운 정신체계를 재구축해 훌륭한 미래사회에 다다를 수 있다고 설파했다.

 내가 주장하는 ‘제3의 인문’은 오랜 시간 남겨진 정신적 유산을 제1의 인문으로, 그 인문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 제2의 인문이며 그 다음으로 직접 나누고 배려하는 살아있는 인문정신을 제3의 인문으로 이 사회에 조금씩 뿌리 내려 가자는 것이다.

거창하게 이름 석 자가 세속에 오르내리지 않아도 좋다. 경제적 확장장치가 작동되지 않아도 좋다. 앨빈 토플러 말대로 새로운 정신체계를 구축하는 데 필요한 작은 이슈와 담론을 끊임없이 풀어내 작지만 내용 있는 가치를 만들어 가는 데 이제 우리 모두 나설 때가 왔다고 본다.

이웃과 주변을 다독이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이 아닌, 아주 조금이라도 나 아닌 타인을 위해 쓸 수 있는 그 무엇을 가지고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우린 감사하고 행복해야 한다.

인문성과 인생관을 재점검해 내게도 이익이 되고 내 주변 타인에게도 이익이 되는 길을 끝없이 찾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본위에서 다른 사람은 자기 같은 생각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혹들을 품고 산다. 과연 그럴까? 아니다. 누구나 대부분 자기본위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풀어가고 있다.

다만 얼마만큼 어디까지 타인의 생각과 일치시켜 보려고 애를 써 본 적 있느냐에 대해서는 진중하게 우리 스스로 묻고 답하며 의미를 구하고 추구해야 한다. 제3의 인문은 나눔과 배려의 시작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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