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경엽 ㈔글로벌녹색경영연구원 교수 겸 기획본부장

  계절의 순환이 주는 의미는 항상 진지하다. 그것은 시간이고 역사이며 흔적일 수 있는 반복과 되돌림의 미학이다. 아마 내가 가진 나이가 가을 즈음의 단풍을 떠올리기에 아주 적당한 듯, 그렇게 가을이면 과묵해지는 이유가 되는 모양이다.

 화려한 채색으로 우리 주변을 마음껏 물들여 놨다가 또 어느 순간엔가 낙엽이 돼 버려진 채 거리를 나뒹굴며 이리저리 흩어지는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얼마 전 리움미술관 개관 10주년 행사에서 세계적 미술평론가 겸 큐레이터 니콜라 부리요의 특별강연이 있었다.

미술에 관해 조예가 깊지 못하지만 지상에 소개된 그의 약력과 철학적 언급은 상당한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미술이론서를 통해 예술과 삶의 관계에 관한 혜안을 피력하는 그는 현대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라고 한다.

“예술은 사회에서 버려진 파편을 재탄생시키는 것”이라든가 “배제되고 소외된 것들을 포용해야 한다” 같은 화두는 많은 성찰을 낳게 하는 언급이었으며, 탈정형성(exform)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는 예술에 관한 역사의 기록에 대한 승자와 패자 이야기는 새삼 주변을 둘러보게 하는 묘한 긴장감을 유발시켰다.

“예술은 역사에 기록된 승자의 역사가 아닌 역사의 반대편에 선 패자들의 역사를 보여 줌으로써 현재 세계를 지탱하는 실체가 무엇인지 파헤친다”고 말했다.

지금 도처에 사업상 위기를 맞이하거나 직장에서 의도적이지 않게 내쳐지는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넘치고 있다. 전혀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기업의 존폐 기로에 서기도 하고 평생을 모든 것 다 바쳐 일했지만 베이비붐 세대의 역할 중단론이나 잉여인간 같은 관점으로 구조조정이니 뭐니 해 가며 그렇게 중·장년층이 속절없이 무너져 가고 있다.

한때는 아버지, 남편, 선배라는 이름으로 여름의 신록 같은 푸르름을 떨치기도 했었던 그런 세대였다. 청년실업만큼이나 중·장년층 일자리도 중요하다는 바로 그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가진 경험자산과 열정, 눈물과 땀의 가치를 이대로 사장시킨다는 것은 결국 국가적·사회적 낭비이며, 버림이고 퇴행이다.

이제 우리는 이 사회에 대해 좀 더 경건해질 필요가 있다. 웃음과 즐거움이 모든 에너지의 성장 동력이라 치부해도 좋다. 깃털만큼이나 가벼운 세상살이의 속절없는 편리와 자동, 안락, 쾌활 같은 모든 활력소 역시 이해한다.

그렇지만 세상은 점점 더 불평등의 사회로 나아가고 있으며 아무런 여과없이 강자논리가 통하는 그런 세상에 우리 모두 민낯을 드러내고 살고 있다는 것이 염려된다.

과거 한 세대를 책임지며 이 사회를 이끌어 온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연계성과 기반성은 보장해 줘야 하는 것이 건강한 사회지표가 돼야 한다. 필요없다고 그냥 헌신짝 내던지듯 하는 사회적 철학의 빈곤은 우리 모두를 서글프고 초라하고 무안하게 만드는 것이다.

한 직장에서 오랜 경험을 가진 전문적 인적 자산을 칼 같은 원칙을 내세워 용도폐기할 것이 아니라, 경험과 자존감을 살려 보다 나은 나눔과 배려의 길을 걷도록 도와줘야 하는 사회적 기준이 골고루 적용되고 확산돼야 한다.

금융권 은퇴자들을 위한 재교육과 재취업은 이러한 사회적 과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지원금을 받아 교육을 수료하는 방식도 좋지만 자존감을 지켜가며 자기의 길을 가는 것 역시 중요하다.

‘금융거래지도사’ 자격증을 가지고 중소기업과 상생하는 진화된 중·장년층 재취업 프레임이야말로 바로 이러한 개인의 자존감,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한다. 이러한 흐름에 대한 제3의 인문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실체가 무엇인지를 보여 줄 수 있다고 확신한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