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제 인천구월서초등학교장

 흔히 교육을 사람을 가르치는 일이라고 말한다. 국어사전에는 교육을 ‘사회생활에 필요한 지식이나 기술 및 바람직한 인성과 체력을 갖도록 가르치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활동’, 백과사전은 ‘교육(敎育, education) 또는 가르침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이나 기술 등을 가르치고 배우는 활동’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민족문화대백과도 교육을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모든 행위를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이며 수단’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리고 ‘가르치다’에 대해 국어사전은 ‘지식이나 기능, 이치 따위를 깨닫게 하거나 익히게 하다’로 설명하고 있다. 정리해 보면 교육은 교수와 학습을 의미하고, 가르침은 교수를 의미하는 것으로, 교육이 가르침보다 크고 넓은 의미를 가진 것으로 설명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말 ‘가르치다’에는 생각보다 훨씬 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가르치다의 옛말은 ‘ㄱ·ㄹ·치다’로, 여기서 ‘ㄱ·ㄹ·’는 가루를 뜻하는 말인 ‘ㄱ·ㄹ-ㄱ·ㄹ·’와 맥을 함께 한다. 가루를 만드는 이치대로 문질러서 갈게 되면, 물건을 마음먹은 대로 쓸모있게 다듬을 수 있는 갈(칼의 옛말)이 된다.

그 뿐 아니라 밭을 갈아 씨를 뿌리면 열매를 맺고, 사람을 갈면 미욱함을 슬기로움으로 만들 수 있기도 한 것이다. 지금도 농촌에서는 ‘텃밭에 채소를 갈아 먹는다’와 같이 씨를 뿌리고 가꾸는 일의 의미로 ‘갈다’를 사용하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고, 표준국어대사전에도 ‘갈아-먹다’를 ‘농사-짓다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풀이하고 있다.

더불어 ‘갈다’라는 옛말은 ‘말하다·이르다’는 뜻도 지니고 있어 남에게 말을 한다는 것은 곧 상대방의 마음 밭을 갈고자 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뜻을 가진 ‘ㄱ·ㄹ-ㄱ·ㄹ·’에 ‘치다’가 붙어서 이뤄진 말이 ‘가르치다’이다.

최세진(崔世珍, 1473~1542)이 지은 어린이용 한자 초학서 「훈몽자회」에는 育자를 칠 육, 養자를 칠 양으로 기록하고 있다. ‘치다’는 ‘기르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에는 ‘치다’라는 말이 양치기, 소치는 아이 등으로 동식물에 국한돼 사용되고 있지만, 옛날에는 부모를 봉양한다는 뜻으로 사람에게도 쓰였다.

가르치다의 ‘치다’에는 이처럼 사람의 정신을 양육한다는 뜻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가르치다는 갈고 치고 하는 것이니, 그야말로 겹겹으로 깊은 덕육의 정신을 담고 있는 것이다.

살펴보면 뜻글자인 한자의 가르칠 교(敎)자보다도 우리말 가르치다의 뜻이 더 깊은 것이다. 敎자는 說文에 따르면 가볍게 두드려 주의를 주는 것과, 애를 써 배움을 합친 회의문자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갈고 치는 우리말 ‘가르치다’의 깊은 뜻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지 않은가?

11월은 가을에서 겨울로 치닫는 달이라는 의미로 우리말로 들겨울달 또는 미틈달이라고 한다.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하는 시기가 멀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학교 또한 한 해 동안의 가르침, 즉 갈고 친 것들을 돌아보고 부족한 부분들을 보완해야 할 시기이다.

다시 말하면 쓸모있게 다듬고, 씨를 뿌리고 가꾸듯 사람을 갈아 미욱함을 슬기롭게 바꾸며, 마음 밭을 갈고, 잘 자라도록 가꾸고 돌봐 왔는가 돌아보며 분석하며 정리하는 시기인 것이다.

더 나은 교육활동을 계획하고 실천하기 위해 결과를 분석해야함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결과를 알기 위해 평가를 하고, 평가에 의해 학교와 학생들의 우열이 구분되는 것은 오늘날 교육의 가장 큰 병리현상이다. 교육의 목적이 평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평가가 교육에 필요한 수단의 일부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교육이 평가를 위한 수단이 돼 버렸음을 부인할 수 없게 됐다. 대학수학능력시험, 대학입학시험, 취업시험 등에서 높은 성적과 좋은 결과를 얻게 만드는 일이, 실질적인 교육 목적이 돼 버린 것이 오늘의 현실은 아닌가?

가르침이란 평가나 결과를 위한 과정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이다. 특정 분야나 영역에서 누가누가 잘하나 비교하고 그에 따른 우열을 가르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소질이나 개성을 찾아 갈고 기르는 일이 가르침이다. ‘가르치다’의 뜻과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생각하며 진정한 가르침이 이뤄지는 들겨울달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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