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확대의 근거 중 하나였던 지하경제 양성화와 비과세 감면 정비 등을 통한 50조여 원 세수 확충 계획은 허언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는 보도다.

 하지만 대통령은 지난 6일 국무회의에서 “경제 활성화를 통한 세수 확보가 우선이고 증세는 검토하지 않겠다”라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재정적자가 심화되고 복지 포퓰리즘이 몰아치는데도 ‘증세가 없다’라고 하는 건 모순된 주장이다. 국민도 문제의 본질을 안다. 증세 없는 복지란 미래 세대의 노동력을 착취해 현재 세대의 복지로 땡겨 쓰겠다는 무책임한 행위임을 말이다.

물론 증세 방안이 녹록한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근로소득 체계는 ‘노동소득 분배율’(OECD 24위)이 낮고, ‘저임금 근로자비율’(2위)이 높은 후진적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섣부른 소득세 인상은 자칫 정치적 치명타로, 모멘텀 없는 부가세 인상은 집권세력의 실권으로 이뤄질 수 있다. 법인세의 경우 최 부총리는 아예 국가 간 경쟁항목으로 규정하며 ‘인상 불가’라고 선을 그었다.

그렇다면 정부는 지체 없이 복지지출 조정 작업을 시작해야만 한다. 남미식 대중영합적 사회주의 모델의 끝은 국가 파산이기 때문이다.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한다. 예컨대 싱글족이 남의 자식 무상보육·무상급식을 위해, 고졸 취업자가 남의 대학 등록금을 위해 세금을 내는 건 불합리하다.

 반면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의료, 교육, 노인 부문은 보편적 복지를 적용하는 게 합리적일 듯하다. 이렇게 유권자 집단별 이해관계를 벗어나 상식적으로 복지체계를 검토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세는 불가피한 선택으로 다가온다. 조세부담률과 복지부담 비율이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법인세의 실효세율·최고세율도 선진국 평균치보다 모두 낮은 수준에 위치하고 있는 게 우리 실상이다.

그런데도 지난 정권부터 지금까지 법인세 인하로 기업의 투자가 확대됐다는 소식은 찾아보기 힘들다. 투자가 시장으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고, 세금 인하와 노동유연성은 그 다음이기 때문이다. 좋은 시장과 산업생태계가 없다면 법인세를 제로로 만들어도 기업은 투자하지 않는다.

한 번쯤 기업 의사결정과 행동과학을 통찰하는 전문가의 조언도 들어봤으면 한다. 얼마 전 시의적절하게도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가 복지·증세 등을 다룰 ‘범국민 조세개혁특위’ 구성을 제안했다. 모처럼 같은 쪽을 가리켰으니 손가락 모양 갖고 뭐라 말고 진지한 담론을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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