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익권 민족문화콘텐츠연구원 석좌교수

 인간이 역사시대로 접어든 이래로 타인과 타 부족(민족)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오순도순 더불어 살아왔을까? 우리는 이 물음에 대해 불편하지만 진실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사실 동서양 각 문명권의 동화(童話)와 동요(童謠)는 한결같이 다툼과 갈등이 없는 동심(童心)의 세계를 형상화해 권선징악(勸善懲惡)을 공통의 교훈으로 일깨워 준다. 물론 스파르타와 같이 극히 예외적인 경우가 있긴 하나 대부분의 문명권에서는 이기심(利己心)을 억제하고 이타심(利他心)을 키우는 착한 어린이가 되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이들이 자라나 어른이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실제 성인 남성들이 주도해 온 인간의 역사는 어떠한가?
20세기 초 미국 철학계의 태두(泰斗)로 이름을 남긴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는 단 한 문장으로 다소 섬뜩하게 인류사를 표현한다. “역사는 피의 욕조이다.”

인류가 역사를 기록해 온 것은 3천400여 년간에 이른다고 한다. 이 기간에 살육과 학살의 전쟁이 없었던 시간은 얼마나 될까? 놀랍게도 온전한 평화시대는 단 286년간이었다.

즉, 인류가 역사를 기록해 온 3천400여 년간 단 8%의 기간만이 평화시대였고 92%의 시간들이 살육과 광기로 점철된 전쟁시대였던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현대 인류로부터 추앙받는 4대 성인(聖人) 모두가 격렬한 전쟁시대를 겪었다. 소크라테스는 그리스 도시국가 아테네의 장갑보병으로 세 차례나 참전을 했었고, 공자(孔子) 또한 춘추오패(春秋五覇)들이 겨루는 전란의 한복판에서 사람에 대한 사랑(仁)을 역설하면서 전쟁 상황에 내던져진 민초의 삶과 무너진 민생을 외면할 수 없었다.

중원대륙의 전쟁터를 오가며 인간 존재와 인성(人性)에 대한 근원적 물음을 끊임없이 던졌던 것이다. 아울러 개인이 처한 실존적 고뇌까지 담아서 제자들과 진솔하게 나눈 대화기록(論纂孔子及其弟子之語-「論語」)은 전통시대 동아시아 독서인들의 대표적인 수양(修養) 지침서(指針書)였으며 오늘날 불후의 고전으로 남아 우리를 일깨워 주고 있다.

공자가 목도하고 비판한 춘추대란(春秋大亂)은 한마디로 천하무도(天下無道)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후일 역사가 사마천(司馬遷)도 고발했듯이 춘추(春秋) 242년간의 통계를 보면 “부하인 대부(大夫)로부터 시해당한 제후(諸侯)군주가 36명이었고 망한 나라가 52개였다.(弑君三十六, 亡國五十二)”고 하니 크고 작은 군사정변과 전란이 끊이질 않았던 것이다.

천하무도의 난세 속에서 스승을 모시던 제자 자공이 스승에게 물었다. “딱 한마디로 평생 실천할 만한 말이 있을까요?” 공자께서 주저하지 않고 말씀하셨다. 그건 아마도 서(恕)일 게다.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않는 것이다.” 죽는 날까지 실천할 딱 한마디의 말을 추천해 달라는 제자의 부탁에 스승은 서(恕)라고 답한다.(子貢問曰 有一言而可以終身行之者乎 子曰 其恕乎 己所不欲 勿施於人(「論語」 衛靈公)

공동체의 공동선(共同善)을 구축해 나가는 것은 가진 자, 누리는 자들의 책임과 의무이다. 그런데 그것이 실종됐다. 고위공직자의 임명을 앞두고 인사청문회가 열릴 때마다 막장드라마 속에서나 볼 수 있는 뻔뻔함의 극치를 연출하는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염치(廉恥)는 찾아볼 길이 없다.

서민들에겐 엄혹한 사법적 처벌이 가해졌을 병역 미필이나 탈세, 주민등록법 위반 등이 고위공직자 후보들에겐 당연히 갖춰야 할 필수 요건이요, 당연시 되는 상습이 됐다. 일제 식민통치와 함께 시작된 근대화 100년. ‘사람됨의 도리’보다는 ‘경제가치’에 올인해 온 우리 삶의 민낯이다.

그렇다면 공동체가 붕괴돼서도 저들의 기득권이 계속될까? 공멸(共滅)을 막는 길, 그것은 바로 작은 배려를 실천하는 일, 즉 최소한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않는 것(恕)에서부터 시작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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