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경제계의 큰 별 하나가 떨어졌다. 故 서달문 ㈜인천형기 대표 겸 인천경영자총협회 CEO인재대학 총동문회장이 영면(永眠)했다. 아직 할 일이 너무도 많이 남은 그의 나이 62세가 향년이 됐다.

고인의 장례 및 영결식은 24일 인천경총CEO인재대학 총동문회장으로 치러졌다.

영결식은 고인이 세상을 떠난 지난 20일부터 이날까지 5일간 고인의 빈소가 차려진 청기와장례식장에서 진행됐다.

식장은 이른 새벽부터 고인의 넋을 기리며 밤새 눈물로 지샌 유가족과 동료·후배들로 가득 찼다. 김대유 인천경총CEO인재대학 총동문회 사무총장은 영결식을 진행하는 내내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한 채 눈물을 머금었다.

김 사무총장은 "한 없이 여리고 정이 넘쳤던 사랑하는 회장님, 끝까지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생전 고인과 인연이 깊던 최광문 인천중소기업청장도 추도사를 통해 먹먹한 가슴을 쓸어내렸다.

최 청장은 "참으로 안타깝고 비통해 밀려오는 슬픔과 허전함을 도저히 억누를 길이 없다"며 "회장님이 대한민국과 인천 중소기업 발전을 위해 이룬 숭고한 업적을 지켜낼 수 있도록 우리모두 혼신의 노력을 다하자"고 말한 후 눈물을 삼켰다.

고인의 뜻을 이어가기 위한 유가족의 약속도 식장을 숙연하게 했다. 고인의 아내인 김숙자 여사와 장남 민호 씨, 딸 은선 씨도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심신이 지쳤지만 꿋꿋이 식장을 지켰다.

민호 씨는 "항상 강하고 엄한 아버지가 술을 많이 드실 땐 무섭고 슬프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마저 볼 수 없게 됐다"며 "쉽게 얻으려 하지 말고 어려운 상황이라도 성실하고 정직하게 헤쳐 나가라는 아버지의 말씀대로, ‘서달문의 아들’로 살아가겠다"고 했다.

영결식이 끝난 뒤 고인의 영정을 실은 운구행렬은 계양구 작전동 자택을 지나 그가 일생을 바쳐 일군 부평구 청천동 인천형기 회사로 도착해 노제가 진행됐다.

유해는 평소 고인의 뜻에 따라 화장돼 장지인 인천가족공원 부평 승화원에 모셨다.

전남 화순에서 태어난 서달문 회장은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에 입학하며 인천과 인연을 쌓았다.

그가 생전에 손수 일궈냈던 ㈜인천형기는 산업용 계량기를 생산하는 업체로, 오늘 날 그를 있게 해 준 자식같은 회사다. 33년째 산업용 계량기 하나만을 가지고 버텨 온 뚝심의 업력이 인천형기를 비롯한 ㈜스케일테크, ㈜인천산업기계 등 6개 계열사로 이어지고 있다.

고인은 지역 사회를 위해서도 다양한 공헌을 펼쳤다.

인천수출경영자협의회 회장을 시작으로 1천400여 업체로 꾸려진 중소기업융합인천부천김포연합회 회장, 서구경영자협의회장, 남북경제협력 인천아카데미 회장, ㈔글로벌녹색경영연구원을 비롯해 타계 직전에는 인천경영자총협회 CEO인재대학 총동문회장으로 800여 동문을 대표했다.

특히 그는 1년 365일 지역사회 어려운 이웃을 위한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인천시 연수구의 사회복지법인 영락원을 비롯해 부평장애인복지관, 사할린동포복지회관 등에 후원을 잊지 않았다.

심지어 이 모든 일을 사비를 털어 실천하는 등 타의 귀감이 되는 일생을 살았다.

유가족은 고인의 뜻을 잇기 위해 장례기간 조화를 대신해 받은 쌀 화환 부조 3천㎏을 인천시사회복지협의회를 통해 인천지역 소외계층에 전달하기로 했다.

"55세까지 딴 생각하지 말고 열심히 성실히 일하고, 사람을 가려쓰되 한 번 믿은 사람은 끝까지 믿어라."

생전에 서 회장이 되뇌었던 삶의 지침은 이제 동료와 후배들에게 큰 울림이 되고 있다.

이재훈 기자 ljh@kihoilbo.co.kr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