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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두환 인천대 객원교수
광복 70년을 맞이하는 올해도 어느 덧 한 달 밖에 남지 않았다. 일제시대 이후 광복 70년을 되돌아보고, 향후 2050년을 바라보면서 2015년을 지내보겠다는 새해의 바램을 되새겨본다.

민주화의 두 거목으로 지칭되는 김영삼(1927년생) 전 대통령이 향년 87세의 나이로 서거하셨다. 2009년 김대중(1924년생) 전 대통령의 서거 때와는 사뭇 감회가 다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때는 민주화의 거목을 떠나보내는 아쉬움과 회한이 절절했다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 때는 떠나보내는 아쉬움만큼이나 치열하게 민주화를 외치던 세대들의 종말을 알리고 현대사를 되돌아 보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

 대한민국은 1945년 광복이후, 건국, 산업화, 민주화, 세계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변화되었고, 현대정치사에서 三金의 영향은 엄청난 것이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가장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았던 김종필(1926년생) 전 총리는 킹메이커의 역할만 한 인물이 되었다.

 김종필은 박정희의 최측근에서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고, 산업화를 이끌었으며, 1990년의 3당 합당으로 김영삼을 대통령으로 만들고, 1997년 대선 때, 자민련 총재로서 평생 경쟁자인 김대중의 대통령 집권만은 막겠다는 김영삼의 뜻에 동조하지 않아, 마침내 김대중은 대통령이 되었다. 그 시대의 정치상황을 볼 때, 만약 3당 합당이 되지 않았다면, 김영삼은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 것이며, 만약 김종필이 김영삼을 도왔다면, 김대중은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지난 11월 25일, 민주평통 인천지부 청년위원회에서 ‘인천 청년단체와 함께하는 통일좌담회’가 개최되었고, 5명의 토론자로 민주평통 인천지부 청년위원장, 새누리당 인천시당 청년위원장, 새정치민주연합 인천시당 청년위원장, 한국청년회의소 인천지구 회장, 한국청년유권자연맹 인천지부 운영위원장이 참석하여, 통일준비에 있어서의 청년의 역할과 통일준비와 지역발전을 위한 초당적 청년 연맹 구성 방안에 대해 토론을 진행하였다.

 미래연구가인 필자가 사회자로서 2시간이 넘는 토론을 진행하면서 느끼는 감회는 이제 통일의 문제는 먼 미래의 이야기 아니고, 지금부터 구체적으로 준비해야 할 현실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토론의 의제를 상정하고, 원활한 토론 진행을 위해, 나는 남북한의 현대사를 재조명하였다.

 광복 후 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그해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으로 인해 한반도에 두 개의 정부가 존재하게 되었다.

 49년 소련은 핵무기 개발에 성공하면서 공산주의를 강화하고 미소 냉전 시대를 열게 되었고, 중국 공산당은 국민당에게 승리하여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하게 된다.

이를 기반으로 1950년 ‘폭풍’이라는 암호명으로 북한은 남침하여, 단 사흘 만에 수도 서울을 함락하게 된다. 1960년 부정선거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 성명을 할 때까지 한국은 미소대결의 전초기지로서 남북한이 극도의 대치상황에 있게 되었다.

 이러한 건국시대를 지나, 한국은 60~70년대 산업화시대를 맞이하게 되고, 70년대 들어 드디어 한국의 경제상황은 북한을 역전하게 되었고, 한강의 기적을 일으켜 1977년 수출 100억 달러를 달성하게 된다. 그러나 72년 유신 헌법으로 인해, 민주주의를 크게 후퇴시키고, 40대 기수론을 펼친 김대중, 김영삼이 정치의 중앙으로 나오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산업화 시대의 역사관은 친일세력을 망각 또는 미화하기 위해, 북한 공산주의 타도와 산업경제에만 집중하게 만들었다. 그럴수록 민주화 세력들은 목숨을 건 투쟁에 나서게 된다.

독재정권과 군사정권의 종말은 민주화 시대를 넘어 세계화 시대를 열게 되고, 역사관 역시 민주세력만을 미화하게 된다.

이 부분이 바로 현 시점에 근현대사를 재조명해야 할 이유이다. 1994년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과 1995년 WTO 출범은 냉전이 해체되고 이념의 공간에 시장이 점유하는 세계화의 도래를 알렸다.

20년이 지난 지금, 정치권은 아직도 구시대적 이념의 사슬에 묶여 한국의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고, 정쟁만을 일삼는 것을 볼 때, 김대중, 김영삼의 빈 공간이 더 크게 느껴진다. 김구 선생은 시대를 관통하는 통찰력을 갖고 통일을 바라보았다. 이제 우리는 통일한국에 대해 좀더 깊이 생각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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