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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성 고양시장
"우리 후세들이 안 당해야 하는 거야, 우리가 당했잖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한 분이 입술을 부르르 떠시며 말씀하셨다.

 얼마 전 어르신들의 보금자리인 ‘나눔의 집’을 찾았을 때, 할머니들은 위안부 한일 협상 결과에 분노와 좌절을 간신히 억누르고 계셨다.

 너무도 익숙한 풍경에 가슴이 미어져 왔다. 지난해 고양국제꽃박람회에 특별히 방문하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나는 휠체어를 밀며 꽃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드렸고, 1억 송이의 꽃들을 둘러보는 할머니들은 아이처럼 좋아하셨다.

어르신들을 종종 뵙는 내겐 낯설면서도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고양 600년 기념 전시관 앞 위안부 소녀상 앞에 멈춰 선 어르신들은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셨다.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진 소녀상을 만든 작가의 작품으로, 시청에서 옮겨 온 조형물이었다. 어르신들의 표정에서 더 이상 어린아이의 미소를 찾아볼 수 없었다. 담담한 표정의 소녀들은 서로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고, 가끔씩 어깨 위에 작은 새 한 마리가 평화롭게 날아와 앉을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주한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옆에는 한파에 아랑곳하지 않고 어린 학생들과 시민들이 상주하고 있다. 텐트를 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아 커다란 비닐 한 장을 나눠 덮고 있을 뿐이다. 굴욕적인 위안부 한일 합의 때문이다.

 아베 총리의 진심 어린 사죄와 법적 보상, 책임자 처벌과 재발 방지 대책, 그리고 위안부 어르신의 동의라는 기본 원칙이 하나도 지켜지지 않은 엉터리 협상 때문이다.

 국회의원 시절 나는 당시 아베 총리의 종군위안부 망언을 비롯해 독도 영유권 논란이 있을 때마다 일본대사관을 방문해 강력히 항의했다. 정부는 언제나 유감을 표명하는 데 급급했고, 나는 정부의 안이한 대처가 훗날 더 큰 왜곡과 모욕을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 예상은 현실이 됐다. 위안부 문제는 흘러간 역사가 아니라 진행되고 있는 현재다. 평화로운 미래를 위해 지금 당장 나서야 할 시급한 문제다. 어떻게 국가가 나서서 다른 나라의 소녀들을 납치해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도 모자라 어떻게 현재의 지도자들이 직접 나서 과거의 역사를 왜곡하고 망언을 늘어놓을 수 있는 것인가?

 일본 도쿄대학교에서 열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증언회에서 나는 아베 총리의 사죄와 배상, 책임자 처벌을 강도 높게 요구했다.

일본 제국주의의 심장부에서, 한반도 문제의 세계적 석학인 와다 하루키 교수 등 일본의 의식 있는 지식인들과 함께 토론을 벌였다.

우리의 자녀들이 또다시 돌이킬 수 없는 치욕을 당하지 않기 위한 대책을 강구하기 위해서였다. 얼마 전 미국 방문에서는 SNS 신평화통일운동을 주장하기도 했다. 국제적 평화 이슈에 대해 세계의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길 바란다는 호소였고, 많은 해외 지도자들이 이에 공감해 주셨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역사를 두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역사는 항상 우리에게 질문한다. 그대는 어디에 서 있으며, 과거로부터 무엇을 배웠으며, 현재 무엇에 공헌하고 있으며, 후손을 위해서 무엇을 남기려느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잊지 않는 일이다. 생생히 기억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 우리를 향한 역사의 질문에 떳떳하게 대답하기 위해서 말이다.

 전 세계로 알리는 일밖엔 없다. 최근 고양시는 시 차원의 SNS 서명운동을 대대적으로 시작했다. 이미 몇 해 전 10만 인의 서명부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전달하기도 했다.

고양시 SNS 서명운동을 중심으로, 앞으로 평화를 애호하는 세계의 시민들과 함께 일본의 만행에 결연한 대응을 해 나갈 것이다.

 진정한 참회는 몇 푼의 돈이 아니라 피해자 어르신들의 한을 풀어주고, 그분들의 진정한 용서가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함을 전 세계에 알려야 한다. 국가가 전면에 나서지 못한다면 지자체 차원에서라도 노력해야 한다. 시민이 주체가 돼 일어서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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