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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섭 인천시 문화관광체육국장
어릴 적 마을 곳곳에 탱자나무가 있었다. 담장이 따로 없었으므로 자연스럽게 울타리가 되기도 했고 여름을 지나면서 노랗게 익은 열매는 갖고 놀기에도 좋았다.

그 열매가 기침감기에 약효를 가진다는 것, 그리고 그 많은 가시로 지난날 유배 죄인을 위리안치(圍籬安置)하는 데 쓰였다는 것은 커 가면서 안 사실이다. 몇 해 전에 시골에서 탱자 묘목을 캐다가 텃밭에 심었는데 그 자람이 참 더디다.

 연전 11월 초께 중국 난징(南京)을 여행하던 차에 길에서 파는 귤을 사 먹어 봤는데 맛이 제법 좋았다. 그런데 그 땅 넓은 대국이라는 중국에서 난 귤이 방울토마토처럼 참으로 작은 것이 아닌가. 회수(淮水)를 건너온 요놈을 꼭 고만한 크기의 탱자로 오인하거나 혹은 은유하기도 했을 법했다.

 이쯤에서 탱자는 하나의 사회학적 상징이자 기호(記號)가 된다. 안자춘추(晏子春秋)에는 남쪽 땅의 귤나무를 북쪽 땅에 옮겨 심으니 무늬만 비슷한 탱자나무가 되더라는 남귤북지(南橘北枳)의 고사가 전한다.

 사람이든 제도든 문물이든 그것이 이식되거나 전파되는 환경에 따라 다양한 변용을 보이는 것을 그 자체로 문제 삼을 게 아니다. 그러나 귤이 탱자되듯 그것이 지닌 본질 내용이나 가치가 빠지고 모양이나 껍데기만 남게 되면 이건 좀 심각한 것이다.

 ‘옷’과 ‘놀이’를 의미하는 단어를 합성한 코스튬플레이(costume play) 혹은 줄여서 ‘코스플레이(코스프레)’라는 일본식 용어가 있다. 유명한 게임이나 영화,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캐릭터와 똑같은 의상을 입고 분장을 하고 행동을 흉내 내는 것을 뜻한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과연 ‘코스프레 사회’에 살고 있지 않은가. 암만 생각해도 그 탱자에 우리 사회의 표피적 자화상이 자꾸 어른거리는 까닭을 좇다가 단재(丹齋)와 조우한다.

 ‘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않고 석가의 조선이 되며,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않고 공자의 조선이 되며, 무슨 주의가 들어와도 조선의 주의가 되지 않고 주의의 조선이 되려 한다.

그리하여 도덕과 주의를 위하는 조선은 있고 조선을 위하는 주의와 도덕은 없다’(1925년 1월 2일자 동아일보 4면, "낭객(浪客)의 신년만필(新年漫筆").

 근 한 세기 전 엄혹했던 식민치하에서 나라 밖을 떠돌던 단재가 노예적 특색이라고 통탄스럽게 목도했던 조선의 아픈 습성 중 하나가 도덕이나 주의(主義), 종교나 이론을 수용함에 있어 주체적 이해를 망각하고 교조와 명분에 매달리는 것이었다.

 단재와 탱자는 서로 다른 모습으로 발현되는 본질적 문제를 지적하는 하나의 목소리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영혼과 통찰의 요구다. 제도건 문물이건 사상이건 무릇 문화는 전파와 변용을 만들어 낸다. 그것이 바람직하기 위해서는 그것들에 구현돼 있는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스스로의 환경과 맥락에 맞게 발전적으로 바꿔 내는 힘과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지금은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는 중국의 중체서용(中體西用), 일본의 화혼양재(和魂洋才) 그리고 우리의 동도서기(東道西器)를 떠올린다. 쓰린 실패의 한계와 교훈에도 불구하고, 밀려오는 서구 제국주의 열강의 문명에 주체적으로 대응하려고 했던 몸부림이 한편으로 새삼 생각나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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