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라도 매립공사 노역자들이 레일 수레에 제방을 막을 흙과 돌을 싣고있는 모습. <사진=봉덕학원 50년사>
이명수 봉덕학원 전 이사장이 매립면허권을 잃은 뒤에도 땅을 찾을 수 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밑바닥에는 땅 소유를 향한 그의 집요함과 사실관계를 제멋대로 재단한 정부의 무관심이 깔려 있다.

 이명수 전 이사장이 농림수산부로부터 처음(1964년 9월 9일) 얻은 청라도 일대 공유수면(1천275㏊) 매립면허권은 사실 공사 시작 7년 만에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다. 공유수면 매립면허 승인권이 농림수산부에서 건설부로 넘어가고, 청라도 일대 공유수면 매립 목적도 수산양식에서 공장 부지 조성으로 바뀐 뒤였다.

 이명수 전 이사장은 매립 목적 변경에 따른 매립면허 실시계획 변경 승인으로 늦춰진 준공기한(1971년 1월 31일)을 맞추지 못했고, 그의 매립면허는 실효됐다. 자금력과 장비 부족으로 매립사업을 계속 벌여 나갈 능력이 이명수 전 이사장에게는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수산양식 목적의 매립사업의 준공 기한은 당초 1968년 9월 9일이었다.

이명수 전 이사장은 매립면허 준공 기한을 앞두고 준공 기한 연장을 진정했으나 건설부는 1971년 1월 23일 불가 통보했다. 그는 준공 기한 연장을 또다시 신청했지만 1월 28일 역시 건설부의 불허 결정이 내려졌다. 마침내 이명수 전 이사장 등 3인(이봉덕 봉덕학원 이사장·김모형 (재)서울성로원 이사장)의 매립면허권이 1971년 4월 15일 효력을 잃고 만 것이다.

▲ 건설부가 1968년 1월에 고시한 인천시 종합계획에는 노역자들이 메운 제방(빨간선)이 표시돼 있다. 파란선은 향후 동아건설산업이 쌓은 제방.
하지만 26일 뒤인 그해 5월 11일 건설부는 희한한 결정을 내렸다. 실효된 이명수 전 이사장 등의 공유수면 매립면허를 되살리는 대신 매립(1천27㏊)면허권을 국영 기업체인 대한준설공사(당시 사장 김재현)에 넘겼다. 이명수 전 이사장이 그동안 자조근로사업으로 쌓아 왔던 제방의 소유권을 주장한 터였다. 그는 미국의 민간구호단체 ‘케어(CARE)’가 지원하고 정부(보건사회부)가 관리하던 밀가루를 노역자들에게 품삯으로 제공하며 고잔~장도~일도~청라도~문첨도~장금도~율도 간 길이 6.93㎞의 제방공사를 벌였다.

 건설부는 이명수 전 이사장과 대한준설공사가 신청한 매립면허 실효 회복 및 권리의무 양도·양수를 허가하면서 조건을 달았다. ‘면허 기간 4년과 2개월 내 구체적인 사업계획 제출’, ‘투자비율 평가에 따른 이명수 이사장과 대한준설공사 간 토지 분배’였다. ‘토지 분배’라는 조건은 이명수 전 이사장이 청라도 매립지 내 소유권 주장을 줄기차게 하는 계기됐다. 그는 제방 축조와 배수공 공사로 4억7천528만 원을 투입했고, 경서동 254번지 주변 13만2천㎡는 매립면허권 양도와 관계없이 단독 준공으로 소유권 주장을 대한준설공사에 고수했다. 그의 주장은 건설부가 ‘공사를 착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방을 국유화한 뒤 대한준설공사의 매립면허권을 취소한 뒤에도 계속됐다.

▲ 청라도 매립공사에 참여한 노역자들이 이용했던 숙소. <사진= 봉덕학원 50년사>
이명수 전 이사장은 청라도 매립지를 포함해 김포매립지 매립면허권을 얻은 동아건설산업㈜과 1984년 6월 1일 부동산 양도 약정을 맺었다. 김포매립지를 준공한 뒤 매립한 토지 중 6만7천㎡를 넘기는 내용이었다. 공유수면 매립면허 승인권을 건설부에서 또다시 넘겨받은 농림수산부가 동아건설산업에게 매립면허를 내주면서 걸었던 조건을 십분 활용했다. ‘매립구역 내 권리자에 대해서 정당한 보상을 하거나 권리자의 동의 없이는 공사를 착수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동아건설산업은 원활한 공사 진행을 위해 매립사업에 손을 떼는 조건으로 토지 일부를 주기로 이명수 전 이사장과 약정한 것이다.

 이명수 전 이사장은 김포매립지에 대한 소유권을 동아건설산업과의 약정 후에도 주장했다. 그는 1987년 3월 12일 최초 매립권자에 대한 기득권을 인정해 김포매립지 165만㎡를 무상 분배할 것을 요구하는 민원을 청와대 민정비서실에 제기하기도 했다. 이 약정은 이명수 전 이사장 일가가 이 전 이사장이 사망한 뒤인 1992년 10월 27일 동아건설산업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잡종지(경서동 641번지) 6만7천470㎡를 되찾는 계기됐다.

 당시 서울민사지방법원의 판결문이 주목을 끈다. 재판부의 판결 주문에는 ‘피고(동아건설산업)는 추가 매립공사를 진행하여…’라고 적시했다. 동아건설산업의 김포매립사업 이전 자조근로사업으로 매립공사를 벌인 청라도 매립사업을 인정한 대목이다.

 하지만 정부와 재판부, 동아건설산업조차 청라도 매립공사 노역자들의 토지 분배 요구에 대해선 응답하지 않았다. 농림부는 청라도 매립면허권자는 이명수 전 이사장이었고, 노역자들의 토지 분배 요구는 이명수 전 이사장과 사적인 계약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자조근로 실시 요령에 따라 노역자들에게 토지를 분배하기로 했던 1969년 7월 18일의 북구청장(박효익)과 이명수 전 이사장 간의 토지 분배 계약서를 정부 스스로가 부정한 것이었다. 동아건설산업도 이명수 전 이사장이 얻었던 최초 매립면허권은 실효돼 김포매립지에 대한 노역자들의 토지 무상 분배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변했다.

#매립면허권 넘겨받은 뒤 대한준설공사 허송세월 결국 면허취소로 국유화

▲ 이명수 봉덕학원 전 이사장 일가가 설립한 청라달튼외국인학교.
건설부 산하 국영 기업체인 대한준설공사가 노역자들이 일군 청라도 인근 공유수면(1천27㏊) 매립지에 손을 들었다. 착공조차 하지 않은 채로 말이다.

 이명수 봉덕학원 전 이사장을 포함해 노역자들은 이를 두고 석연치 않다며 의구심을 드러냈다. 노역자들이 축조한 제방 등 매립시설을 국가가 공짜로 집어삼키기 위한 사전 포석이 아니냐는 따짐이다.

 이명수 전 이사장은 1971년 4월 30일 청라도 인근 공유수면 매립면허권을 대한준설공사에 넘겼다. 공장 부지 조성이 목적인 이 매립의 기간은 4년이었고, 2개월 안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한 뒤 착공하기로 매립면허에 조건을 달았다.

 하지만 대한준설공사는 꼼짝하지 않았다. 국영 기업체인 대한준설공사도 감당하기 쉽지 않은 공사였다. 제방과 배수로, 매립공사 등 추가 공사비로 61억4천300만 원을 투입해야 했다. 정부의 말대로 조속한 시일 안에 완공해 공장용지로 공급할 수 있었던 형편이 아니었다. 그 엄청난 공사비를 조달하기 위해선 매립된 땅을 담보로 은행권에서 돈을 빌려 투자해야 했지만 그럴 경우 이미 매립사업을 벌여 온 이명수 전 이사장의 투자 지분을 늘리는 꼴이었다. 건설부와 대한준설공사 입장에선 공사 착수를 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뒀다가 매립면허 취소로 매립시설물을 국유화하는 편이 훨씬 나은 것으로 생각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건설부는 1972년 10월 31일 대한준설공사의 매립면허를 취소하고 제방 등 시설물을 국유화화했다. 결과론으로 보면 건설부의 국유화는 노역자들에 대한 토지 분배 의무가 사라지는 대신 이명수 전 이사장에게는 동아건설산업㈜을 상대로 토지를 찾는 새로운 기회였다.

 박정환 기자 hi21@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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