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잘생긴 한기진"이라는 말이 그것이다. 이름 앞에 과분한 수식어를 달았다. 유명인은 남들이 알아서 달아 주지만, 난 내 스스로 붙였다. 아니, "이 세상에서 누가 가장 잘 생겼니?"라며 묻는 수천, 수만 번 반복된 내 질문에 한결같이 답변한 거울이 붙여줬다는 것이 옳다. ‘잘생긴 조인성’, ‘잘생긴 원빈’, ‘잘생긴’과 관련한 사회적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넘어가겠다는 뜻이다. 나의 입버릇은 전화 통화를 할 때 진가를 발휘한다. 통화가 연결되면 다짜고짜 "잘생긴 한기진 기자입니다"라고 신분을 밝힌다. 처음 통화하는 사람들은 "무슨 개 풀 뜯어 먹다 이빨 부러질 소린가"하며 신기해 했을 거다. 가끔 ‘풉’하며 입에서 음료를 내뿜는 효과음도 들린다. 하지만, 내 입버릇은 마약보다 중독성이 강하다. 두 번째 통화부터는 "아 예"하며 마지못해 인정하는 척?하다가 세 번째 통화부터는 "잘 생긴 한 기자님이시죠?"하며 먼저 반긴다. 중독됐다. 이 입버릇은 일상에서도 자주 사용된다. 강렬한 내 포스에 눌려 쭈뼛쭈뼛하며 내 옆에 서지 못하는 후배를 향해 "극명한 비교가 될까봐 잘 생긴 내 옆에 서는 게 부담되지?" 이런 식이다.

 이러한 나의 입버릇은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이 극복만이 사람들이 올바른 지식이나 판단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 ‘4대 우상론’ 가운데 ‘시장의 우상’에 근거한다. ‘시장의 우상’은 계속 그 말을 반복하면 그것을 사실이라고 믿게 되는 현상이다.

 나라 전체가 깊은 수렁에 빠졌다. 정치·경제·사회·국방 전반에 걸친 위기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다 알고 계시리라.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예측하기 힘든 상황, 매일 화면과 활자를 통해 반복적으로 전해지는 암울한 소식들, 깊이를 알 수 없는 자괴감, 치유하기 어려운 상실감,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 아주 형편없는 나라로 각인되는 ‘시장의 우상’에 모두가 빠질까 걱정이다. 대문호 헤밍웨이가 쿠바의 한 술집에서 ‘모히또’를 한 손에 들고 바라봤을 푸른 바다처럼, 할아버지가 긴 곰방대를 털던 빨간 불씨가 담긴 화로처럼 온 국민에게 청량감과 따뜻한 온기를 전해줄 뉴스가 그리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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