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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석 회장과 마이클 잭슨.
"수백㎞의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8년 만에 끝낸 동아건설산업㈜(이하 동아)이 고작 10.6㎞짜리 용수로 공사를 11년째 질질 끌고 있다. 동아는 진정 김포간척지를 농경지로 조성할 의지가 있는가?" 1998년 4월 17일 오후 농림부 장관실에서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이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에게 한 질책이었다.

 최 전 회장이 일주일 뒤 서명할 40억 달러 규모의 외자유치 양해각서 내용을 내놓으면서 김포간척지의 용도변경 가능성을 타진하자 김 전 장관은 "가당치 않다"며 일침을 놓았다.

 최 전 회장은 이 자리에서 양해각서 체결 취소를 전제로 김포간척지 영농을 위한 용수로 건설 비용이라도 지원해 줄 것을 요청하며 정부와 거래를 시도했다. 김 전 장관은 이 또한 단칼에 거절했다. 정부는 동아의 김포간척지 영농 의지를 진작부터 의심하고 있던 터였다.

 김포간척지 용도변경(농경지→첨단산업·관광단지)에 대한 동아의 의지는 필사적이었다. 때마침 1997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 말기에 닥친 IMF 외환위기가 동아의 김포간척지 용도변경의 빌미로 작용했다. 여기에 농경지 조성용이었던 김포간척지(3천800㏊) 중 폐기물 매립 용도로 1988년 2월 10일 환경청에 넘어간 수도권매립지(2천75㏊)도 동아의 짬짜미에 힘을 싣는 구실을 했다. 수도권매립지 조성으로 용수로 개발계획이 틀어졌던 것이다.

▲ 1977년 사우디아라비아와 12억5000만 달러 규모의 전화통신공사를 수주한 뒤칼리드 국왕과 악수하고 있는 최원석 회장.
‘농지전용부담금과 대체 농지 조성으로 농림부 수익 2천200억 원 발생’ 등 당근책을 운운하며 동아의 김포간척지 용도변경 시도는 집요했다.

 동아는 김포간척지를 첨단공업 및 관광단지로 용도를 바꿀 경우 급부상할 특혜 시비와 농지 감소 문제 해결을 위한 3가지 방안을 내놓았다. 황당하기까지 한 내용이었다.

 개발이익을 전액 국가에 헌납하되 김포간척지 규모(1천649㏊)보다 큰 대체 농지를 간척사업으로 다시 조성한 뒤 이 역시 국가에 내놓는다는 것이 첫째 안이었다.

 당시 갯벌과 해양환경을 보전하자는 여론이 들끓었고, 김포간척지처럼 대규모 신규 간척사업은 사실상 어림없는 노릇이었다. 농림부도 1997년부터 민간은 물론 국가 시행의 새 간척사업조차 중단한 상태였다.

 동아는 농지 1천233㏊ 중 667㏊를 첨단산업단지와 관광용지로 용도변경하고, 나머지 566㏊는 국가에 헌납하겠다는 또 다른 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농림부는 용도변경 대상지인 동아 소유의 667㏊ 시세 차익을 계산하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 최원석 회장이 리비아 카다피와 함께 있다.
마지막 안은 김포간척지 용도변경에 대한 동아의 측은한 몸부림을 그대로 보여 줬다. 김포간척지의 개발이익금으로 중국이나 러시아 연해주 등 해외에 대규모 농장을 조성한 뒤 국내 인력을 파견해 쌀 증산과 고용 효과를 노리자는 제안이었다.

 농림부는 혀를 찼다. 해외 농장 개발도 적정량의 농업용수가 확보돼야 하고 기후와 토질이 맞아야 하는데, 동아 측에 이를 책임질 수 있느냐고 따졌다. 여기에 농장 개발 상대국 정부와의 합의와 영농인력 확보 등 현실적 문제를 풀 수 있는 수단을 내놓을 것을 동아 측에 주문했다. 이런 제안은 국내 식량안보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동아 측을 힐난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동아는 농경지로 김포간척지의 부적절성을 꼬집었다. 간척지의 소금기를 들고 나왔다. 조기찬 동아농업사업소장은 김포간척지의 염분 농도가 2만5천~3만7천PPM으로 벼나 보리가 자랄 수 없는 한계 농지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농사를 짓기 위해선 적어도 10년 이상 지나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농림부는 즉각 반발했다. 바닷물 농도의 경우 연안이 2만5천PPM이고, 심해가 3만8천PPM인 점을 감안하면 동아 측의 주장은 터무니없다는 반론이었다. 농림부는 1996년 12월 현지 조사한 김포간척지의 염도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3천46~2만4천64PPM으로 1987년 제방이 완공된 김포간척지의 소금기가 이미 상당 부분 씻겨 나갔다고 역공했다.

 농림부는 "1995년 준공된 현대건설의 서산간척지도 벼농사를 짓고 있는데, 왜 자꾸 엉뚱한 소리를 하느냐"며 "당장 용수를 개발해 농사를 지으라"고 호통쳤다.

현대건설은 1996년(벼 재배 면적 7천802㏊)과 1997년(9천462㏊) 서산간척지 A·B지구에서 각각 1만3천895t과 2만4천400t의 쌀을 생산했다. 1997년 동아의 김포간척지 영농 면적은 벼 재배(면적 41㏊)와 잔디 재배 등을 합해 모두 82㏊에 그쳤다.

▲ 리비아 대수로 공사현장.
동아는 용수로 개발에 난색을 보였다. 지가 상승과 토지소유자들의 비협조를 그 이유로 내세웠다. 민자사업으로 추진 중인 국책사업들이 IMF 사태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용수로와 겹치는 공사 구간의 관통 및 비용 부담을 꺼린다는 것이었다. 용수로를 건설하려면 최소 5년 이상 걸린다는 게 동아 측의 설명이었다.

한강 물을 끌어다가 쓰는 김포간척농지 농업용수 개발사업의 사업비는 259억8천만 원이었다. 1998년부터 2001년까지 김포 신곡양수장에서 길이 10.6㎞의 수로를 확장하고 보강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아직 건설조차 안 된 경인운하(당시 굴포천 방수로)의 통과 구간 950m가 걸림돌로 작용하자 동아는 이를 꼬투리 삼아 용수로 개발을 미적거렸다.

 농림부는 동아가 김포간척지를 농경지로 조성할 의지가 있으면 경인운하 통과 구간을 뺀 나머지 구간만이라도 착공하라고 압박했다. 또 매립 용도대로 사업 추진을 안 할 경우 공유수면매립법의 벌칙 조항 강화(100만 원 이하의 벌금→3년 이하의 징역 또는 해당 토지가격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 이하의 벌금)를 건설교통부 장관에게 요청하기도 했다.

 김포간척지 용도변경으로 홍콩식 자유도시 건설을 꿈꿨던 동아의 계획은 처절한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정·재계는 ‘찬성’ 시민사회 ‘반대’ 엇갈린 지역여론

▲ 청라 매립지.
전국의 이슈로 떠오른 김포간척지 용도변경을 둘러싸고 인천 지역사회는 널뛰기를 했다.

인천시와 인천시의회, 인천상공회의소 등 인천 정·경제계는 김포간척지 용도변경을 찬성하는 모습을 내비쳤다.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인천시민사회단체는 김포간척지 용도변경 불가 입장을 고수하면서 맞섰다.

 인천시는 1996년 8월 31일 김포간척지 조성 방향을 시의회에 보고했다. 당초 매립 목적인 농경지가 아닌 관광레저단지와 국제업무단지 조성이 그 골자였다.

 시는 1996년 11월 21일 ‘2010년 인천시도시기본계획안’을 건설교통부에 제출했다. 김포간척농지 1천649㏊ 중 잡종지 236㏊를 주거와 상업용지로 용도변경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사라질 물거품만 일으켰다. 건교부 중앙도시계획위원회가 김포간척지 용도변경 대상 잡종지를 뺀 채 인천시도시기본계획안을 의결한 것이었다.

 인천시의회 박균영 의원 등 4명은 1997년 12월 16일 영농부대시설 등 180㏊가 도시용지로 개발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민원을 제기했다.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동아는 당시 김포간척지 1천649㏊ 중 논(791㏊)과 밭(338㏊) 등 농지 1천129㏊와 영농시설 133㏊를 소유하고 있었다. 나머지 387㏊는 농지개량시설 등으로 국가 소유였다. 동아는 1991년 1월 8일 농경지 조성으로 김포간척지 준공인가를 받은 뒤 농사를 짓지 않아 비업무용 토지 보유로 연간 200억 원의 세금을 물었다.

 환경단체와 농민단체는 김포간척지의 용도변경을 대기업에 대한 특혜로 몰아붙이며 정부의 결단을 촉구했다. 이들 단체는 ▶용도변경 계획 즉각 중단 ▶새로 들어선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정부 특혜 시도 중단 ▶갯벌 매립지역에 대한 적절한 관리대책 등을 요구했다.

 김포간척지의 용도변경은 끝내 없던 일로 됐다. 김포간척지의 소유권이 바뀌자 빗장이 걸려 있던 용도변경의 상황이 달라졌다. 1999년 5월 31일 김포간척지 1천223㏊가 6천355억 원에 국가 소유로 넘어갔다.

 재정경제부는 2013년 8월 11일 김포간척지를 인천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했다. 시는 2008년 12월 20일 2025 인천도시기본계획 변경을 통해 김포간척지를 보존용지에서 시가화용지로 바꿨다.

 박정환 기자 hi21@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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