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龍)은 동양에서 길조의 상징이다. 재앙을 물리쳐 복을 가져오는 웅비와 희망의 상징이다. 머리와 꼬리만 보일 뿐 몸통은 구름에 가려져 하늘을 나는 상상 속의 신비로운 영물이다. 아래로는 깊은 바다를 다스리고, 위로는 구만리 창천까지 솟구치며, 비구름을 마음대로 부린다. 여의주를 입에 물고 무소불위의 존재로서 모든 조화를 부릴 수 있다. 그래서 용은 왕권이나 왕위 등 절대 권력을 과시하는 상징이 됐다. 국왕은 용의 혈통을 이어받았다 해 용에 비유했다. 국왕의 얼굴은 용안, 입은 옷은 용포, 앉는 자리는 용상이라 표현했다.

 삼경의 하나인 「주역」에는 여러 단계로 변모하는 용이 등장한다. 용이 승천하는 기세의 변화를 이용해 세상의 변화를 표현하고 있다. ‘잠룡’은 깊은 연못 속에 잠겨 있는 용으로, 아직 때를 만나지 못한 성인을 상징한다. ‘현룡’은 밭에 모습을 드러낸 용으로, 큰 뜻을 품은 인물이 세상에 두각을 나타낸 상태를 상징한다. ‘비룡’은 이미 하늘에서 훨훨 날고 있는 용으로, 제왕 자리에 오른 인물을 상징한다. ‘항룡’은 가장 높이 올랐다가 후회할 일을 저지른 용으로, 운수를 다해 추락할 운명에 놓인 제왕을 상징한다.

 용의 순수 우리말은 ‘미르’다. 국정농단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 씨가 설립을 주도한 재단의 이름도 ‘미르’다. 재단의 로고는 용을 형상화했다. ‘비룡’ 옆에 있으니 제 자신도 용인 줄 알았으리라. 용은 목 아래에 거꾸로 된 비늘이 하나 있다. ‘역린’이다. 역린을 건드리면 누구도 죽음을 면치 못한다. 우리 전설에 상상의 동물이 하나 더 등장한다. 이무기다. 용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용은 아니다. 차가운 물속에서 천년 동안 깊이 잠겨 있어야 용이 된다. 그런데, 불과 60년밖에 살지 못한, 이무기 형상도 채 갖추지 못한 늙은 구렁이가 연못을 흐리다 용의 역린을 건드렸다. 나라의 왕은 국민이라 했으니 모든 국민이 용이요, 모든 용에는 역린이 있다. 왕의 뜻을 거슬러 노여움을 샀더니 살아 있는 역린이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