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험생을 둔 전국의 학부모들은 오늘만큼은 꼭두새벽에 일어났다. 전자레인지에 데운 즉석밥이 아니라 압력밥솥에 김이 모락나는 집밥을 먹이고 싶어서였다. 수능시험을 보는 아들딸들에게 오늘 그 시간만큼은 없던 기운도 솟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말이다. "마음 편안히 먹어, 긴장하지 말고. 정신 놓지 말고. 파이팅!" 뻔한 당부와 격려로 시험장 정문으로 들어서는 아들딸들에게 힘을 북돋웠다. 집과 직장에 돌아와서도 안절부절했다.
‘지혜와 혜안을 주셔서 모쪼록 시험을 잘 치를 수 있게 하소서.’ ‘답을 몰라 찍더라도 제발 정답에 표기하기를…’, 평소 찾지 않던 신의 가호를 수없이 되뇌었다. 그렇게 치성한 학부모들의 속은 착잡했다. 경쟁의 원칙을 지키지 못한 기성세대의 좌절감이었다. 상식조차 파괴된 경쟁의 한가운데에 빨려 들어간 그 젊은 영혼의 수험생들 심정은 오죽 처절했을까? 시험을 못 치를 불안감에서가 아니라 시험 성적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없는 사회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일반 수험생들은 대학만을 바라보고 새벽밥에 별을 보는 등·하굣길에 아등바등했다. 고3의 비선실세의 딸은 17일을 출석하고도 졸업장이 나왔다. 하위권 빌빌거리던 그는 특채로 대학까지 척하고 붙었다. 살아있는 지성이라는 대학과 교수들까지 불의(不義)의 권력과 서슴없이 타협했다. 헌정 유린과 국정 농단, 민주주의를 파괴한 정상(定常)의 비정상화(非正常化) 집단 앞에 무릎을 꿇었다. 시험장에 들어가는 아들딸들에게 학부모는 차마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 말을 했다. ‘시험 잘 봐’라고….
우리의 수험생들은 ‘그깟 수능 잘 봐서 뭐해’라고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묵묵히 시험장으로 들어섰다. 청와대는 수험생들의 질서 있는 몸부림의 하루를 지켜봤는지 모를 일이다.
박정환 기자 hi21@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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