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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덕우 인천시 역사자료관 전문위원
인천의 부평지역이 ‘새나라자동차’에서 ‘한국지엠’으로 사명(社名)을 바꿔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 자동차 산업의 메카로 부상한 지 반백 년이 넘었다. 한국에 자동차가 등장한 것은 1902년 고종 황제의 즉위 40년을 기념하는 소위 ‘칭경예식(稱慶禮式)’을 치르기 위해 미국으로부터 자동차를 구입했을 때부터이다. 비록 예식이 끝난 후에 도착했지만 고종의 자동차는 인천항에서 경인선 기차에 태워져 서울로 실려 갔으니 인천은 자동차 최초 상륙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운전수, 휘발유, 부속품 등의 미비로 인해 궁궐 한쪽에 방치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자동차산업은 한국전쟁 폐허 속에서 출발했다. 전쟁 중 파손된 미군의 폐차가 불하돼, 이를 바탕으로 전국의 정비업소나 운수회사들은 재생 자동차를 만들어 냈다. 폐기된 차에서 쓸 만한 엔진과 부품을 골라내고 망치로 드럼통을 펴서 버스, 트럭, 합승 택시를 만드는 이른바 군용 폐차 재생시대를 만든 것이다. ‘지프’ 엔진을 모방했지만 순수 국산 엔진이었던 ‘시발’(始發)자동차는 1955년 이러한 배경하에 탄생했다. ‘첫출발’을 의미하는 ‘시발’자동차는 그해 ‘광복10주년 기념 산업박람회’에서 대통령상을 타게 되면서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고 한국 자동차 공업을 개척했다.

5·16군사정변 이후 1962년 ‘자동차공업 보호육성법’이 제정되기는 했지만, 외국산 자동차 및 부품의 수입금지가 골자임에도 불구하고 제3공화국 정부는 일본산 자동차를 들여와 사용하면서 기술을 배우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해외자본의 국내투자라는 명목으로 재일교포에게 ‘닛산’ 자동차를 반제품으로 수입해 조립, 생산하는 ‘새나라자동차’의 설립을 허가했다. 이에 따라 새나라자동차는 일본 닛산과 손잡고 1962년 8월 한국 최초의 현대식 자동차 공장을 당시 1억 원의 자금으로 지금의 부평에 착공했다. 이해 11월부터 연산 6천 대의 생산능력을 갖춘 조립공장은 현재 한국지엠의 전신이기도 하다.

닛산의 ‘블루버드’ 부품을 수입해 조립된 새나라자동차는 유선형에 가까운 세련된 외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기존 ‘시발’의 지프형 승용차 시대를 제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외제 자동차 도입을 억제하던 정부가 국내 사업가도 아닌 재일교포에게 현대식 자동차 공장 설립을 허가해 준 것은 당시 ‘4대 의혹 사건’과 함께 정치 쟁점화돼 새나라자동차 시대를 단명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여기에는 외화 사정이 악화돼 더 이상 일본에서 자동차를 들여올 수도 없었던 것도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결국 부평의 새나라자동차는 1965년 부산에서 성장한 ‘신진공업사’에게 인수됐다. 신진공업사는 1955년에 설립된 자동차공장으로 폐차 새시를 재생해 25인승 마이크로 버스를 만들었고, ‘시발’에 이어 두 번째 국산차이면서 세단형 승용차 ‘신성호’를 만들어 실력을 인정받던 회사였다. 신진공업사는 새나라자동차를 인수하고 ‘신진자동차’로 이름도 바꾸었다. 이어 1966년 일본 도요타자동차와 기술 및 자재 도입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1972년 토요타자동차가 중국에 진출하기 위해 신진자동차와의 제휴를 청산하자 신진자동차는 제너럴모터스(GM)와 합작으로 ‘GM코리아’를 설립했다.

1970년대 불어 닥친 석유파동은 1976년 GM코리아를 산업은행 관리로 넘어 가게 했고 ‘새한자동차’로 회사명도 변경됐다. 1983년 대우그룹은 새한자동차를 인수하면서 ‘대우자동차’로 상호를 바꿨고, 1992년 GM의 지분마저 인수함으로써 세계화를 위한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 그러나 1998년 거세게 불어 닥친 환란으로 국가가 경제위기에 몰리면서 2001년 GM에 매각됐고 2003년 GM대우로 상호를 변경했다. 급기야 2011년 브랜드 전략 발표회를 통해 GM대우는 ‘한국지엠’으로 회사명을 바꾸고 모든 신제품은 ‘쉐보레’ 브랜드로 출시했다. 한국지엠으로까지 이어 내려온 길은 그간 인천 지역사회가 구축해 온 자동차 산업 중추로서의 염원이기도 하다. 한국지엠의 경영 불안, 수출 및 내수 감소, 비용 대비 효율성, 구조조정 등의 문제가 불거져 있지만 그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보면서 상생할 수 있는 묘책이 만들어져 재도약 발판으로 삼기를 기원한다.

▣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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