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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석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2018년 4월 27일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남북 정상회담을 갖고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을 발표했다. 선언의 핵심적 요지는 남북관계의 전면적·획기적인 개선과 발전을 이룩하도록 하고, 남과 북은 군사적 긴장완화와 전쟁위험 해소를 위해 공동으로 노력하며, 남과 북은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적극 협력한다는 것이다.

 북한과 미국은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정상회담을 갖기로 했는데, 이 회담에서 양측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폐기와 검증을 미국의 북한체제보장과 경제개발지원과 교환하는 통 큰 합의를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 적어도 이쯤에서 아니면 이후 개최가 예상되는 한국, 북한, 미국, 중국 4국회담 후 정부는 ‘판문점선언’의 국회비준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바야흐로 동북아 국제정치 지형이 급변하려 하고 있다.

 첫 번째 변화는 남북관계의 근본적 변화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대한민국의 영토를 ‘한반도와 부속도서’로 규정하고 있고 대한민국은 1948년 12월 제3차 유엔총회에서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로 승인 받았으므로, 사실상의 인정에도 불구하고 헌법상 북한지역은 대한민국의 영토이나 통치권이 미치고 있지 아니한 미수복지역이고 북한정권은 불법 정권이다. 판문점회담에서 남북 정상은 향후 전쟁을 부인하고 적절한 절차를 밟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기로 합의했다.

 이 합의가 국회 비준을 받는다면 (헌법이 개정돼야 완성될 것이나) 북한정권은 대한민국 국회에 의해 승인된 합법적인 정권이 되고 북한지역은(장래 통일돼야 할 지역이나) 대한민국의 영토에서 분리돼 ‘사실상 한반도 1민족 2국가체제’가 ‘법적인 한반도 1민족 2국가체제’로 바뀐다.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은 한편으로는 ‘분열’의 제도화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남북 ‘평화공존’이란 양면성을 갖는다.

 두 번째 변화는 북한의 국제제제 편입과 이로 인한 동북아 국제정치 지형의 변화이다. 북한은 1948년 정권수립 이후 자행한 한국전쟁, 국제법규 위반 그리고 핵과 미사일 개발로 국제사회에서 고립됐고 ‘정상국가’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북한은 4월 27일 가진 남북정상회담과 앞으로 가질 북미정상회담을 계기로 고립에서 탈피할 수 있게 됐다.

 더구나 ‘차이나 패싱’을 우려하는 중국이 북한에 대해 ‘기미정책’을 구사하고 ‘재팬 패싱’을 우려하는 일본이 북한에 대한 접근정책을 모색하고 있으므로, 북한은 향후 북미정상회담과 후속적인 국제회의 후 정상국가로 인정을 받고 제대로 국제체제에 편입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동북아 국제제제에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세계적인 냉전체제 해체와 달리 남북관계와 동북아 국제관계는 북한발 위기로 말미암아 냉전체제와 유사한 자유민주주의 전통을 가진 국가군과 공산주의 전통을 가진 국가군의 대립 구조 또는 남방의 해양세력 국가군과 북방의 육상세력의 국가군 대립 구조가 일정 부분 지속됐는데, 이제 그 대립 구조가 깨지려 하고 있다.

 한국은 같은 진영에 속한 국가 사이의 결속과 다른 진영에 속한 국가를 배척하는 양자택일적 행동 양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고 있으며, 북한 또한 미국과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선택지를 넓힐 수 있다.

 동북아 국제관계는 점점 더 경합적인 세력균형체제로 나아가고 있다. 새로운 국제 환경에서 장차 한민족은 현재 사람과 상품이 체제를 달리하는 한국과 중국 사이에 자유롭게 이동하듯 남과 북이 교류하는 정도의 ‘사실상의 통일’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게르만 민족이면서도 1민족 2국가로 분열된 독일-오스트리아 방식과 달리 합의에 의한 통일을 이룩한 예멘 방식을 진정으로 선호한다면, 각별한 민족적 자각과 노력이 필요하다. 강대국이 포진한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로 말미암아 통일된 하나의 한민족 국가는 평화롭게 공존하지만 분열된 2개의 한민족 국가보다 더 자율성을 갖고 더 큰 자긍심을 갖게 한다.

 8천만의 인구를 갖고 산업화되고 통일된 참된 민주주주의 국가 한국은 결코 중소국가가 아니다. 그런 통일한국을 이룩하기 위해 한국 국민은 아니 한민족은 정체성을 유지하고 냉엄한 국제정치 환경에서 구심력을 갖고 행동하며 민족통일이란 꿈과 의지를 저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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