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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보다 영상의 힘이 강력해진 포스트 역사 시대에 우리는 미디어가 구축한 스펙터클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본연의 모습과 실재가 갖는 진정성의 힘은 사라지고, 피상적인 이미지가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가령 아름다움이나 행복에 대한 기준이 김태희나 전지현, 부가티와 람보르기니 같은 슈퍼카를 모는 인생으로 간략하게 정의되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다양한 가치는 사라지고 미디어가 이상화한 형상이 새로운 기준이 돼 채울 수 없는 욕망을 자극한다.

영화가 주는 이미지도 마찬가지다. 오랜 시간 반복적으로 활용된 이야기는 대중을 강하게 세뇌시켜 실체를 흐려 놓는다. 한 남성은 말한다. 유년시절 즐겨 보던 프로그램인 ‘타잔’에서 주인공이 야만인인 흑인 원주민을 처단하는 것에 희열을 느꼈다고. 그러나 돌이켜보면 이는 흑인인 자신을 죽이라는 외침이었다고 고백한다. 이는 영화 ‘블랙클랜스맨’ 중 흑인 운동가 콰메 투레의 연설 내용으로, 오늘 소개하는 ‘블랙클랜스맨’은 극단적인 백인 우월주의 집단을 소재로 비이성이 낳은 차별과 폭력을 고발하는 작품이다. 스파이크 리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100년이란 긴 시간 동안 영화가 창조한 흑인의 거짓 이미지를 꼬집으며 끝나지 않은 인종차별의 문제를 쟁점화했다.

영화는 1970년대 미국 콜로라도주 최초의 흑인 경찰이 된 론 스툴워스가 백인 우월주의 단체인 KKK에 직접 가담해 잠복 수사를 펼치는 내용이다. 노예제를 둘러싼 갈등으로 촉발된 남북전쟁이 노예 해방을 주장하던 북부의 승리로 끝나자 남부의 퇴역 군인 몇몇이 모여 창설한 단체가 KKK의 효시로, 이 조직은 1910년대부터 폭발적으로 성장해 피부색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을 넘어 폭행과 테러도 서슴지 않는 맹목적인 증오 단체가 됐다. 이런 조직에 흑인 경찰이 신분을 속인 채 정식 멤버가 되고, 더 나아가 지도부의 신임을 얻어 고위직까지 오르게 된다는 이야기는 황당한 허구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는 2014년 론 스툴워스 형사의 자서전을 각색한 실화라는 사실이 더욱 놀랍다.

‘블랙클랜스맨(BlacKkKlansman)’이라는 제목은 흑인인 Black man과 KKK(Ku Klux Klan)의 합성어로 백인 우월주의 집단에 잠입 성공한 흑인 경찰의 상황을 보여 주는 제목이다. 영화 ‘똑바로 살아라’, ‘정글 피버’, ‘말콤 X’ 등으로 1980∼90년대 흑인에 대한 미국 사회의 부당한 시선에 맞서는 목소리를 낸 스파이크 리 감독은 2018년 ‘블랙클랜스맨’으로 돌아왔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과거의 이야기를 단순히 알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역사적 이야기를 현 시대와 연결시켜 쟁점화하고 싶었다는 소명을 밝혔다. 다시 말하면 이 작품은 인종차별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영화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보다는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차별적 증오의 연쇄작용에 주목하며, 이를 통해 관객들 각자 깨닫고 옳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행동하길 촉구하고 있다.

영화 속 차별과 갈등은 넓게 보면 인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는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될 수도 있고, 관행처럼 굳어진 불합리한 시스템의 한계로도 읽을 수 있다. 침묵한다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변화는 내 목소리를 찾고 이를 말하는 데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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