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이해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우리는 그것을 사관, 혹은 역사인식, 역사의식이라 표현한다. 그런데 그러한 역사의식에는 시대정신이 용해되어야 하고 그 시대정신에는 책임성과 객관성이 내포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작 과거 역사의 청산문제나 국제적인 이해관계가 얽힌 부분에서는 몇몇 역사책이나 TV 등 방송매체를 통해 습득한 지식만으로 역사를 저울질하거나 판단하려는 경우를 종종 발견하게 된다.
 
여기에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을 둘러싼 논란과 한·일 독도 분쟁 등 동북아 갈등이 수그러들지 않고, 이를 둘러싼 민족·국가주의 논쟁이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시민단체들이 “역사를 뺏길 수 없다”며 일어서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편협한 민족주의나 일국 중심의 국가주의를 넘어서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심지어 국사 자체를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등장했다.


책임성 있는 역사의식 가져야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이러한 봉착한 여러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는 시대정신이나 역사의식을 가진 것일까? 이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내릴 수는 없다 하더라도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역사가 어떤 목적을 가진 이념의 실현도구나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되며, 그런 경우의 불행한 예를 우리는 과거 역사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실제로 `역사라는 거대한 바다'를 항해하다 보면 역사를 움직이는 법칙과 과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역사탐구에 대한 열망과 시대정신이 내포된 역사의식에 대해 책임성을 느낀 것은 우리 선조들도 마찬가지였다. 자신들이 살았던 시대정신을 정립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으며, 그 결실이 오늘날 우리에게 당시의 시대상을 대변해 주는 귀중한 근거가 되고 있으니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물론 전통사회에 있어서 역사편찬은 개인의 서술이 아니다. 따라서 삼국사기나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은 봉명찬(奉命撰)이며 공동저작이다. 더구나 역사서술이 춘추필법(春秋筆法)에 따라 술이부작(述而不作)의 작사태도(作史態度)에 따른 기존문헌의 전재(轉載)에 불과했으므로, 편사관들의 창작물이 아니다. 그러나 책임 편수관인 12세기 고려시대의 김부식이나 15세기 조선시대의 정인지 등이 그 때의 현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장본인들이었으므로 책 속에는 이 모든 것이 반영돼 있었다.
 
그러므로 김부식이 자신의 시대풍조를 질타하며 “지금의 학사대부(學士大夫)가 오경(五經)·제자(諸子)의 서(書)라든지, 진한역대(秦漢歷代)의 사기(史記)에 대하여는 혹 널리 통하여 자세히 말하는 사람이 있으나, 우리나라의 사실(事實)에 이르러선 도리어 망연(茫然)하여 그 시말(始末)을 알지 못하니 매우 유감된 일이다”고 한 것이나, 고려사를 편찬했던 정인지가 “듣건대 새 도끼 자루를 다듬을 때에는 헌 도끼 자루를 표준으로 삼으며 뒷 수레는 앞 수레의 넘어지는 것을 보고 자기의 교훈으로 삼는다고 합니다. 대개 지난 시기의 흥망이 장래의 교훈으로 되기 때문에 이 역사서를 편찬하여 올리는 바입니다”라고 한 것 등에서 교훈으로서 역사를 인식한 시대정신을 볼 수 있다.
 
한편으로 선조들은 균형적인 역사의식도 함께 가지고 있었으니, 삼국사기나 고려사에 투영된 왕권옹호적 시각은 삼국유사와 고려사절요에서 서민적 혹은 신료적인 입장을 반영함으로써 그 시대정신의 객관성을 추구하고 있다. 고려시대인들이 12세기 인종대의 귀족정치의 모순을 목도하고 삼국사기를 통해 그 근본과 규범을 밝힘으로써 정치질서를 옹호하고 정립시키려는 시대정신을 간파했다면, 삼국유사에서는 고려후기 원간섭기의 국가적인 난관을 단군(天)과 연결된 한국고대사의 기원을 밝혀 민족적 긍지를 세워보려는 승화된 역사의식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선조들의 균형있는 사관

 
최근 들어 우리는 무언가에 쫓기는 듯 급박하게 전개되는 우리의 일상을 종종 발견한다. 우리는 먼 훗날 이 시대를 증언해 줄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느끼면서 살고 있는 것일까? 개혁과 변화에 맞는 시대정신은 과연 무엇일까? 무엇이든지 빠른 해결을 원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차분히 고민하거나 순차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아니라 가시적이고 즉흥적인 해결책에 급급하고 있다. 또 상대방과의 차분한 대화보다는 원인과 결과만 따지고 그 과정은 대충 생략해 버린다. 역사에서 그 진행과정이 생략된다면 이 또한 역사의 의미를 잃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조들이 지닌 사관(史觀)에 대한 균형감각은 오늘날 극단으로만 치닫는 우리에게 분명 시대정신의 자각과 역사의식의 책임성을 깨닫게 해주고 있는 것이다.

강옥엽 인천시 역사자료관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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