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600차 수요정기 집회가 지난 17일 낮 12시 1천명이 참가한 가운데 일본 대사관 앞에서 열렸다. 1992년 1월8일 첫 수요 집회가 시작된 이래 한 번도 빠짐없이 집회가 이어졌고 이날 600번째 집회가 이루어진 것이다. 집회에는 위안부 할머니 20여명, 여러 시민단체, 종교단체와 학생 등이 참가해 `위안부 문제 해결'과 `일본 정부의 전쟁 범죄 인정'을 외쳤다. 이날 집회는 한국에서뿐만이 아니라 대만, 필리핀, 일본, 미국, 스페인, 벨기에, 독일 등 7개국의 대사관이나 역, 시청 앞과 전국의 대학에서 동시 다발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이 집회를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게 된 계기는 위안부 누드 파문으로 인한 것이었다. 1992년 이래로 끊임없이 집회는 계속되었어도 그 실체에 대해 우리는 잘 알지 못했다. 잘 알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별 관심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더욱이 정부는 이러한 문제에서 양국간의 관계에 얽매여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니 우리의 관심 밖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으리라. 우리의 할머니들만이 몇몇의 도움을 받으며 외로운 투쟁을 해 왔던 것이다. 일본 정부가 사과와 공식배상을 하지 않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천황제 때문이고 2차 세계대전과 그 당시 일어난 전쟁범죄들에 대한 책임 문제가 천황에게 연결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일본인들 가운데서도 이러한 일본정부의 태도에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런데도 당사인 우리는 너무나 무관심했다.
 
우리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있어 용어에 대한 정의도 제대로 내리지 못하고 언론마다 각기 다른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사무총장은 “가장 정확하고 공식적인 용어는 중국이나 대만 등 한자권에서는 `일본군 위안부'라고 한다”며 “UN 등 국제기구나 영어권에서는 `위안부(comfortwomen)'라는 영어 표현이 역사적인 의미를 담아낼 수 없어 `일본군 성노예(Military Sexual Slavery by Japan)'를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윤 총장은 “용어 안에 범죄 행위의 주체인 `일본군'을 명확히 언급해야 하고, 이들이 저지른 범죄가 어떤 것인지 드러낼 수 있도록 `위안부'를 명기해야 한다”며 “일본이 저지른 만행과, 그 만행에 짓밟힌 한국 여성의 인권 등에 대해 작은 따옴표를 사용해 역사적인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역사 공부를 하는데 있어 용어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사용은 대단히 중요하다. 어떠한 용어를 사용하는가의 문제는 곧 그 사람의 역사인식 내지는 역사의식과도 밀접한 관계를 갖기 때문이다. 위안부 문제에 있어 용어 사용의 혼란이 오는 이유는 그것이 갖는 문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저 감각적으로 용어를 사용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과거 식민사관에서 탈피하지 못했던 용어 중에 `이조(李朝)'라는 단어가 있다. 학생들과 수업을 하면서 `이조'와 `조선(朝鮮)'의 차이가 무엇일까 물어보면 우리의 역사인식이 얼마나 부끄러운 정도인가를 느낄 수 있다. 일단은 그 책임이 그러한 식민지 사관을 극복하지 못했던 역사학자에게 있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도 그 용어가 어떻게 변했는지 관심이 없다. 어차피 이조시대 혹은 조선시대라고 이야기해도 그 왕의 성이 이씨(李氏)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그 차이가 무엇이겠는가 하는 정도에서 생각이 머무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연히 존재하고 있던 왕조를 그들의 편의대로 `이씨조선'이라고 이야기 하고자 했던 그들의 의도를 간파한다면 용어의 올바른 사용이 왜 중요한지를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역사를 배우면서 역사를 안다고 이야기 하지만 우리가 아는 역사가 무엇인지를 되물으면 할 수 있는 말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러면서도 역사를 안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그것은 역사를 아는 것이 아니고 단지 역사적인 사실을 기억하는 것뿐이다. 과거의 사실을 아는 것 그 자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역사를 고민해야하는 이유는 과거의 사실을 밝히는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현재와 앞으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를 고민하기 때문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연결한다는 것, 이것이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은 일이기에 역사라는 것이 간단하지 않은 것이다. 참으로 어수선한 3월을 보내며 다시금 역사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된다.

김상태(한국정신문화연구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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