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림 칼럼니스트
김호림 칼럼니스트

우리 전통사회의 가정집 울타리를 넘어 들려왔던 소리는 곧 정겨움 자체였다. 혹 박물관에 가면 그 사라진 정겨운 기억을 되돌려 볼 수 있을까? 흔히 건강한 가정에서 들려오는 아름다움은 아이의 울음소리, 책 읽는 소리 그리고 여인들의 다듬이 소리라고 한다. 그러나 이들은 우리에게 아득한 그리움만 남긴 채 멀어져 간 추억일 뿐이다. 이제 아이의 울음소리가 도시에서도 그리 들려오지 않는다. 그만큼 젊은이들이 아이를 이전처럼 출산하지 않는다. 더욱이 그들에게는 결혼이라는 인생의 대사(大事)도 선택사항이 됐다. 가정을 이뤄 생육하고 번성해, 땅에 충만하라는 창조주의 문화명령이 지켜지지 않는다. 

이는 무엇보다 경제적인 문제가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이러한 예를 가까운 일본에서 볼 수 있다. 장기간의 경기 부진으로 일본 국민은 소비 활동을 멈췄다. 이뿐 아니라 공황이 심화되자 젊은이들은 자녀도 낳지 않았다. 그 결과 일본 사회는 고령화 국가가 돼 젊은이들은 노령인구를 부양하기에 엄청난 부담을 안고 있다. 일본은 이제 아기 기저귀보다 성인 기저귀를 더 소비하는 나라가 됐다. 

이와는 달리 미국의 인구구조는 대대적인 소비 활동을 할 수 있는 청년층 근로자집단이 증가하는 추세여서, 국부와 안보 강화에 기여는 물론 왕성한 소비 수요로 경제 대국의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불행히도 이러한 조건을 갖춘 나라가 지구상에 겨우 10여 개국에 불과하고, 이 10여 개국의 소비시장을 모두 합쳐도 미국의 소비시장보다 크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므로, 이러한 인구구조가 유지되는 한, 미국은 경제 대국 지위를 지속할 것이다. 

그러나 이 나라는 인구절벽 위험에 대한 뚜렷한 대책 없이, 일본과 같은 고령사회로 급속히 진입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다음으로 사라진 책 읽는 소리를 생각해보자. 

예나 지금이나 책 읽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중국 송나라의 정자(程子)는 "오늘날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설사 논어를 읽을지라도, 읽기 전의 그러한 사람이 읽은 뒤에도 그러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면, 이것은 읽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이다"라고 그 당시 세태를 한탄했다. 즉, 지금부터 1천 년 전 중국 사회에서도 책을 별로 읽지 않았으며, 설령 읽는다 하더라도 깨달음이나 교훈을 받지 않는다면 독서의 의미가 없다는 것을 그는 경고했다. 

이러한 독서 기피 현상을 일본의 유명 소설가인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는 그의 수필 ‘어찌하여 사람들은 책일 읽지 않게 되었는가?’에서 "젊은이들이 독서 외의 활동에 시간을 많이 뺏겨,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 것이 그 이유다"라고 설명했는데, 이는 디지털시대의 공통된 현상이다. 유튜브나 페이스북, 스마트폰이 세상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이같이, 인터넷 시대 독서는 단편적인 정보 습득 수준에서 멈출 뿐, 독서의 핵심인 ‘사색하는 과정’을 통한 뇌의 재편성을 경시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결국, 이러한 ‘사색하는 과정’이 없는 독서에서 미래를 위한 창조력을 기대할 수 없다. 어릴 때부터 독서 훈련이 요구된다. 

마지막으로 정겨운 다듬이 소리를 기억해보자. 늦은 가을이나 겨울 밤, 우리의 어머님과 누님들이 낮 동안 힘겨운 노동을 마무리한 후, 정갈하게 빨래한 옷감을 다듬잇돌 위에 올려놓고, 마주 앉아,  다듬잇방망이를 두드리는 모습은 한 폭의 동양화이다. 더욱이 차가운 밤의 정적을 가르고 흩어지는 다듬이 소리와 문풍지 창밖으로 비취는 두 여인의 그림자를 이제는 다시 들을 수도, 볼 수도 없는 풍경이 돼버렸다. 이처럼 한국의 여인들은 고된 하루의 노동을 미학으로 승화시켰다. 물론 오늘날의 여성들도 직장생활과 육아로 쉴 틈이 없다. 

그러나 인간의 노동이 기능으로만 작동하면 우리 사회는 너무 삭막하다. 그러할수록 인정의 기미(幾微)가 드러나는 여유로운 풍경을 만들 필요가 있다. 힘든 하루 일을 마치고 땅거미 지는 들녘에서 기도하는 밀레 ‘만종’에서의 부부 모습이 그러하다. 이처럼 정겹고 아름다운 소리는 사라지고, 그 대신 도시의 온갖 소음과 광장에서 분노의 함성, 그리고 자영업자들의 한숨 소리만 들리는 시대가 됐다. 과연 이 땅에 아름다운 소리가 다시 들리는 회복의 때가 속히 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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