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아동보육관련 시민단체들과 한 자리에 모인 적이 있다. 간담회 주제는 어린이집 등 아동보육시설과 가정에서 발생하는 아동학대의 실태와 이의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맞벌이 부부와 저소득층의 증가로 아동보육과 교육이 방치되고 그 사이 `교육',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비인격적이고 비윤리적인 폭력적 아동인권침해가 빈발하고 있다, 성장기 아동의 육체적·정신적 피해 증가는 건강한 성장은 물론 사회안전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강력한 법적·행정적 조치가 요구된다는 등 사회의 관심과 국가의 책임 강화론이 오갔다. 이같은 주장은 참교육학부모회가 몇해 전부터 전개해온 학교내 체벌금지 캠페인, `꽃으로도 때리지 마세요'란 상담사례집 발간, 초중등교육법 중 체벌금지 법제화 운동과도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현안이다.

지난 해 인천지역의 모 어린이집에서 발생한 원장의 아동학대 사건은 지역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7살, 10살 아동에게 `수세미로 입닦기'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계단 수백번씩 오르내리기', `밥 굶기기', `새벽까지 잠 안 재우기', `상습적인 몽둥이질' 등 소위 교육자에 의해 저질러진 상상조차 하기 힘든 처참한 아동학대는 무방비상태의 아동에 대한 우리사회 비이성적인 어른들의 천박한 문화와 결코 뗄 수 없는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런 행태들은 비단 신고된 이 어린이집에서만 발생하고 있다고 어찌 장담할 수 있겠는가.

중앙아동학대예방센터에 2002년 접수된 건수는 2천946건으로 2003년 상반기에만 해도 1천725건이 접수됐다고 한다. 이중 어린이집 등 유아교육기관과 보육시설에서의 폭력도 213건이나 된다고 한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2003년 1월 권고문에서 우리나라의 아동체벌을 전면금지하고 관련법규정과 규칙을 개정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그러나 아동학대사건의 재판과정과 이후 판결을 지켜본 많은 사람들은 판사와 변호사가 아동을 한 인격체로 바로보고 있는지, 인권존중의 사회가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는 사회정의구현에 진정으로 앞장서고 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며 `이래도 되는 것인가' 분노를 표했다. “피고인이 나름의 교육철학으로 아이들을 돌보려고 했으나 정도가 지나쳤다”, “피고인이 잘못을 뉘우쳤고 피해아동의 부모들이 처벌을 원치 않았다”, “문제가 된 어린이집도 폐업됐고 피해아동의 부모가 아이들을 잘 돌보겠다고 다짐한 사실도 인정됐다”등으로 성장기 아동의 정신적, 육체적 피해를 가족개인의 문제로 떠넘기는 결정적 오류를 범하고 있으니 소송과정에서 판결에 이르기까지 판사와 변호인이 보여준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은 우리 사회의 인권의식 수준이 얼마나 천박하고 비합리한 수준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체벌, 성폭력 등 아동학대의 문제는 정도의 차이로 인식하거나 방치할 문제가 아니다. 판결을 교육적으로 해석할 문제도 아니다. 성장기 아동의 심리적 불안과 영향의 과학적 연구결과를 충분히 고려한다면 아동학대를 정당화하려는 사회악의 존재가 뿌리뽑혀야 한다는 의식이 우선돼야 한다. 또한 단순히 가족 또는 쌍방의 화해정도로 떠넘겨 어린이집 등 유아교육기관과 학교에서 발생하는 각종 체벌을 `사랑의 매' 정도로 정당화하는, 그것도 최고의 학벌과 인텔리집단에 있는 판사와 변호사가 아동인권을 이렇게 해석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어찌 학대받는 어린이들이 이 사회에서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신고 처리된 여러 사례의 경우 원장은 처벌돼도 어린이집 등 교육시설은 허가취소 또는 폐쇄조치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현행 아동복지법의 선언적 규정 때문으로 법개정을 촉구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깜깜 무소식이다. 아무리 사회정의를, 사회복지를 외친들 이해관계에 얽힌 법규정이 `오냐'하고 덥썩 받아들여질리 없겠지만 적어도 아동학대의 범죄사실이 드러난 사람들이 다시는 교육계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는 인식의 전환과 사회적 합의, 관련 시민단체들의 적극적 대응은 보여주어야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런 목소리도 소수에 불과한 실정이다. 답답하기 그지없다.

지난 1월 유아교육법제정과 영유아보육법의 개정으로 유아교육이 공교육체계에 들어옴으로써 유아교육기관의 역할이 중요하게 인식돼 시설의 책임강화와 학부모의 목소리가 높아지게 됐다. 7년여에 걸친 유아교육법제정운동은 유아교육에 대한 국가와 자치단체의 책임강화요구, 맞벌이 부부의 자녀보육의 문제해결과 난립해 있는 유아교육기관의 일원화 촉구에서 출발했다. 부족하지만 완성된 교육법체계의 틀을 이루었다면 아동복지법개정과 함께 이제는 아동보육기관에서 발생하는 체벌과 성폭력 등 비인격적이고 비윤리적인 아동학대의 문제를 법적 규제를 통해 강력하게 대응하고 예방할 수 있는 입법운동이 필요하지 않은가 생각한다.

박인옥 참교육학부모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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