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탈냉전 흐름을 타던 국제정세가 이제 21세기형 신냉전으로 퇴화하고 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미국·일본·호주·인도를 축으로 하는 해양 동맹과 러시아·중국을 축으로 하는 대륙 동맹의 대립이 가시화된 것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미 격렬한 물밑 대립이 벌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2년 전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지역 활성화’를 제시한 이후 미국은 중거리 미사일 배치를 비롯해 탤리즈먼 세이버 훈련, 퍼시픽 림 등 다국적 합동군사훈련으로 중국과 러시아를 압박하고, 중·러는 이에 대응해 전략적 협력을 대대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작년 6월 시진핑-푸틴 정상회담에서 양국 관계를 ‘새 시대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기로 한 후에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계 및 신무기들을 무력화시킬 첨단무기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이 좋은 예다. 

이런 가운데 아베 총리는 미국 측에 적극 동참해 ‘해양 동맹’의 주축국 역할을 떠맡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의 전략가들에게서 호감을 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대륙 동맹’에 등을 돌리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센카쿠 분쟁 이후 중국과 관계개선이 이뤄져 교류와 협력이 크게 증대하는 외교를 펼치고 있다. 미·중이 첨예하게 갈등하는 상황에서 어느 한쪽에 경사돼 다른 한쪽과 등지는 것이 아니라 양쪽과 모두 원만한 관계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국제관계란 영원한 적도 영원한 아군도 없다. 되레 갈등하는 사이에서 양쪽과 모두 원만하게 지내는 것이 국익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둘 다 몸이 달게 만들면 자국의 몸값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건 상식 아닌가.

원래 인도·태평양 전략을 트럼프 대통령보다 앞서 주창한 인물이 아베 총리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중국을 방문해 ‘일·중 관계의 신시대’를 여는 발 빠른 행보를 보였다. 기업인 500 명을 대동하고 가서 180억 달러에 이르는 계약을 체결하고 300억 달러 신용 스와프에 합의했다. 

그리고 일본에서 가진 정상회담에서는 양국 관계를 ‘영원한 이웃나라’로 규정했다. 이때 아베 총리는 "내년 벚꽃이 필 때 시 주석을 국빈으로 초청해 양국 관계를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싶다"고 말하고 "대단히 좋은 아이디어"라는 시 주석의 화담을 끌어냈다. 이는 단순한 국익적 계산만 작용하고 있지 않다는 데서 여러 모로 생각하게 해 준다.

1945년 8월 일본이 항복하자 중국 대륙에서 마오쩌둥과 장제스는 내전에 들어갔고, 이때 장제스는 미국의 원조를 받아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이때 마오쩌둥이 손을 벌린 대상은 옛 일본군. 1946년 1월 마오쩌둥의 동북민주연군항공총대가 발족할 수 있었던 것은 관동군 제2항공군 대장 하야시 야이치로의 도움 덕분이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 하야시는 이후 항공학교 산파역으로 공산당 공군 인력을 양성해주고 1956년에야 일본으로 귀국했고 이후 일·중 우호협회장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구원(舊怨)에 얽매여 현재와 미래를 과거의 포로로 삼는 것은 국제관계에서 현명한 짓이 아니라는 건 상식이 된 지 오래다. 

인도의 모디 총리도 취임식 때 시 주석 대신에 티베트 망명정부 수반과 타이완 무역대표를 초청했었으나 이후에 미국과 안보 협력을 강화하면서 중국에도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어 상하이 협력기구 정상회담에 참가하는 등 친중 행보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잖은가. 

21세기 ‘신냉전’은 안보·경제를 비롯해 복합적 현상으로 나타나게 되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안보상 긴장과 무역 경제 경쟁, 얽혀져 있는 생산 연결망으로 자본과 기술, 인간과 정보는 실로 단언하기 어려운 복잡성을 띨 것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이런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생존전략 자체가 복합적이 될 수밖에 없다. 

아베 총리의 신우익 민족주의는 우리와 역사 전쟁을 초래했고 무역 갈등을 비롯해 양국민의 교류와 협력관계 등 다양한 면에서 우리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음은 이미 진행 중인 바다. 더구나 그는 한일 갈등에서 양보할 뜻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2020년 세계는 예전보다 훨씬 휘발성과 가연성이 높아진 미국 대통령을 안고 출발했다. 우리의 외교 역량이 아직은 시들지 않았을 것으로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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