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코로나 총선’이라지만 선거판은 끝내 안갯속이다. 투표일이 곧 닥칠 텐데 정책도 인물도 보이지 않는다. 한쪽은 국난 극복이라는 명분에 묶여 있고, 다른 한쪽은 오로지 반대의 연장선에 있을 뿐이다. 선거가 선거다워야 한다는 건 자명한 일이다. 문재인 정권의 지난 3년에 실정이 있었다면 반드시 심판해야 하고 앞으로 2년에 대해서도 설계를 내놓아야 한다. 심판이 야당 몫이라면 남은 2년의 설계는 여당 몫이어야 한다. 만일 지난 3년간 오로지 발목잡기에만 골똘했던 야당이라면 이번 기회에 당 해체 수준의 응징을 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심판도 응징도 설계도 보이지 않는다.

비례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괴뢰정당에 가면 아연해진다. 국회선진화법까지 무시하며 온몸을 던져 선거법 개정을 거부했던 거대 야당이 괴뢰정당을 만든 것을, 그리고 그 괴뢰정당이 여당의 괴뢰정당을 부르고 비례대표제 선거법의 취지는 무력화될 것을 예상하지 못했을까? 그걸 예상하지 못했다면 무능의 극치고 예상했다면 공범일 뿐이다. 이러니 거대 양당의 진영논리만으로 편이 갈라지고 선거 결과는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자조로 끝날 가능성이 농후해졌다. 

국민을 대표하는 정당들이 당리당략에 따라 경쟁하고 협상하여 사회적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는 대의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해 대의성을 확보한다. 선거의 전 과정을 관리하는 선거법이 있고, 그 테두리 안에서 정당들을 움직이는 운동법칙이 있다. 전자는 변할 수 있으나 후자는 그렇지 않다. 단순하다. 정당이 대표하는 이념과 정책을 바탕으로 선거에서 다수 의석을 확보하기 위해 행동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괴뢰정당의 출현은 이런 취지에 반하는 결과가 나온다. 거대 양당 위주의 결과가 당연히 나오기 마련이다.

불과 3년 전 우리는 대통령 탄핵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겪었다. 탄핵된 대통령과 집권세력의 불통과 권위주의에 억눌린 사회가 만들어낸 20대 국회는 최악의 성적표를 만들고 주저앉았다. 이번 21대 총선은 그 낡은 옷을 벗어 던지고 역사적 분기점에서 우리가 체득한 국가 개혁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실현해야 할 텐데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미 결정된 탄핵의 시시비비, 아직도 상대 당에 대한 종북좌파 색칠놀음으로 힘 빼는 데 급급하고 묻지 마 발목잡기와 호도된 주장이 난무하고 있다. 더하여 단기적 성과주의와 독선으로 일관하고 개혁보다는 현실정치에 안주하려는 모습도 역력하다. 말만 아닐 뿐. 

코로나19의 범람(?)과 괴뢰당 난립에 가려진 이번 4·15 총선의 역사적 의미를 되짚어야 하고 그것이 국민의 선택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당위론은 그저 기차 지나간 뒤에 내뿜는 한숨에 그쳐야 할 것인가? 공정경제, 복지국가, 혁신성장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주장하던 목소리들은 지금 소란한 선거판에 묻혀버리고 그저 공약집에 남은 것으로 끝날 것인가? 깨어 있는 시민의식은 또다시 주저앉고 진영논리에 갇힌 거친 소리만 공허하게 울리는 오늘의 선거판을 보면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가슴 아파하는지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성숙한 대응과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승리를 거두고 있다. 어느 후보자의 주장처럼 내년 노벨의학상 수상자는 대한민국 국민이 받아야 하는지 모를 정도다. 처음 질병 관리와 방역 체계에 혼선이 오고 국민적 질타가 쏟아지면서 자기반성과 혁신적 조처가 거듭되었고 드디어 오늘과 같은 방역 성과를 올리게 되었다. 우리는 짧은 기간에 고도성장을 이루었다고 자랑하지만 그 속에 온갖 모순된 구조와 일그러진 논리도 많았고 이를 극복하는 현명함도 잊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가 겪는 진통이 바로 그런 극복의 과정일 수 있다는 말이다. 

유권자들이 눈을 부릅뜨고 귀를 활짝 열어야 한다. 공정한 시장질서, 공적 감시기구의 정상화, 부패무능의 척결, 합리적인 미래사회 건설을 누가 외치는지 찾아봐야 한다. 만날 아파트나 짓고 다리나 놓고, 지역경제 활성화니 운운하면서 국회의원이 도대체 뭘 해야 하는지 모르는 패거리 괴뢰정당 하수인들을 모아 여의도 의회를 구성해봐야 희망이 없다는 걸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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