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헌법이 아무래도 중대한 결함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TV 논어 강좌로 세간의 화제를 모은 바 있는 어느 교수는 작금의 탄핵 사태와 관련해 `민중의 함성, 그것이 헌법'이라는 글에서 “헌법은 조문이 아니라 역사적 체험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것”이라면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지 말고 민중은 분연히 일어서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최근 선거에서 승리, 당선의 기쁨 속에 있을 어느 선량(選良)은 국민이 뽑은 대통령의 진퇴를 헌법재판소에서 재판으로 판결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많은 국민들이 또 국회의 대통령 탄핵 결의를 쿠데타로 보고 있기도 하다.


애꿎은 헌법만 타박 받아

 
탄핵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일단 이러한 논리의 내면을 살펴보면 저마다 우리나라의 기본법인 헌법과는 그 주장이 정면으로 배치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서 말한 대로 민중이 일어서야 한다거나, 헌법재판소가 헌법대로 결정하는 일이 잘못되었다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틀림없이 법치가 아닌 쿠데타 상황일 터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쿠데타는 분명 일어나지 않은 채 애꿎은 헌법만 이리저리 타박을 받고 있는 셈이다.
 
헌법이 이런 대우를 받는 것을 보며 우리같이 법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은 우리 헌법이 필경 무슨 큰 결함을 가진 것이나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쩌면 도무지 현실에 맞지 않는 구물(舊物)이거나, 지독한 악법이거나, 당장 고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중대한, 지극히 잘못된 조항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게도 되는 것이다. 사실 그런 잘못된 법이 지금까지 나라를 지탱해 온 헌법이었다면 한탄이 절로 나올 만도 하다. 더구나 이런 생각을 갖는 데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다름 아닌 사회 각 방면에 영향력 있는 교수, 선량, 지도층 인사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한편 생각해 보면 헌법이 그토록 엉망이었다면 왜 이제 와서, 바로 이 나라 최고 지성인들과 입법 당사자인 일부 선량들에 의해 부정되고 심지어는 지키지 않아도 될 듯 싶은 뉘앙스를 풍기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혹, 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으니까 법을 개정하거나 정비할 필요를 못 느꼈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참으로 슬픈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최소한 국가로부터 세비를 받는 입법부 의원으로서 그 의무 중 가장 기본적인 것이 입법 활동이라면 임기 내 언제든 잘못된 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진작에 정비를 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지 못했다면 이제 와서 그런 식으로 목청을 높일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시, 한 번 더 탄핵의 잘잘못은 논외로 하고, 비록 잘못된 헌법 밑에서라도 그 법에 따라 일어난 사태를 민중의 힘으로 누르고, 또 그 법에 따라 일어난 사태를 쿠데타로 여기는 사고방식, 이것은 스스로 민주국가를 부정하는 처사에 결코 다름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다. 나쁜 일을 하지 않았지만 사형선고를 받았고, 친구의 탈옥 권유를 거절한 채 의연히 독배를 든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법은 절차에 따라 개정되거나 폐지될 수 있지만 실정법은 유효하다”는 어느 판사의 말은 차라리 상식에 지나지 않는다.


법치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대통령을 국민이 뽑은 것과 마찬가지로 국회의원 역시 국민이 선출한 것은 틀림없다. 이것이 바로 직접 민주주의이다. 반면에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아 헌법재판관을 선출하는 것이 이를테면 간접민주주의의 한 예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두 가지 기능이 합쳐져 결국 민주주의 정체를 이루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아무리 억울하고 괴로워도 이것이 우리의 민주주의의 원칙임에는 틀림없다.
 
이번 선거로써 민심의 소재가 확인되었다. 민중 운운하는 이야기나 헌법조차 지키지 않아도 되는 듯한 언행은 지금 옳지 못하다. 나라의 정체를 부정하고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때일수록 법치 원칙이 절실히 필요하다.

김윤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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