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학성 인하대 사학과 교수
임학성 인하대 사학과 교수

내가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 앞에 제법 큰 규모의 커피숍이 있어 집을 오갈 때 그 앞을 지나치곤 한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로 집에 있는 날이 많았던 탓에 그 커피숍에 이틀이 멀다 하고 들르는 일이 많아졌다. 커피숍은 오전은 물론 오후까지도 빈자리가 거의 없을 정도로 손님이 많았고, 대다수는 얼핏 봐도 대학생임이 분명한 손님들이었다. 이들 대학생들은 두세 명이 함께 모여 각자의 노트북을 켜고 대화를 주고받으며 워드 작업도 하고 동영상을 시청하는 모습을 보였다. ‘학교라는 정해진 공간에서 교수와 학생이 대면’하던 대학의 오랜 강의 시스템이 코로나19 사태로 ‘아무 공간에서나 교수와 학생이 비대면’하는 방식으로 바뀐 것이었다. 

 대학생들이 택한 최적, 최상의 그 ‘아무 공간’은 바로 커피숍이었는데, 그런 점에서 커피숍은 대학 강의실 기능을 대신하게 됐다고 볼 수도 있겠다. 5천 원 정도 비용이면 향기로운 커피와 함께 시간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지낼 수 있는 쾌적한 대학 강의실! 사실 커피숍의 역사를 살펴보면 대학과 전혀 무관하지 만은 않다. 1650년 옥스퍼드, 1652년 런던 등에서 영국 최초의 커피하우스(숍)가 오픈한 이후 영국 전역에서 커피하우스가 폭발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해 17세기 후반께에는 인구 50만 명의 런던에 커피하우스가 3천 개나 들어설 정도였다고 한다. 

 유럽의 이웃나라와 달리 영국에서 커피하우스가 대유행한 까닭은 1649년에 발발한 청교도혁명으로 시민계급이 주요 정치세력으로 대두했고, 이들이 정치적 의견을 교류할 장소가 필요했던 데에서 그 배경을 찾고 있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17세기에 유럽에 전해진 커피는 귀족 등 일부 사람들만 마시는 귀한 음료였는데, 영국의 커피하우스 대유행은 커피 향유층의 신분적 제한을 깨는 ‘평등’의 의의도 지녔던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당시 영국의 커피하우스 풍경을 묘사한 글(탄베 유키히로 저, 윤선해 옮김, 「커피세계사」, 황소자리, 2019)에 따르면, 커피하우스에는 귀족이든 천민이든 누구나 차별 없이 출입할 수 있었고, 입장한 손님들은 하우스 내에서 이뤄지는 어떤 대화에도 참여가 가능했다고 한다.  그런데 하우스에 입장하려면 1페니를 지불해야 했고, 입장 후 한 잔에 2페니를 지불하고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즉 1페니만 지불하면 커피하우스에 입장해 토론을 경청해 배우거나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마치 대학 강의실처럼… 그래서 영국 사람들은 커피하우스를 ‘페니 유니버시티’(penny universities)라고 불렀다고 한다. 

 어찌 보면 영국에 커피하우스가 처음 오픈한 곳이 바로 대학도시였던 옥스퍼드였다는 점도 페니 유니버시티 형성에 적잖은 영향을 줬음이 분명하겠다. 커피하우스는 정보와 지식의 교류뿐 아니라 상거래가 활발히 이뤄지는 곳이었으며, 소식지나 신문을 발행하기도 했다. 영국의 커피하우스는 비슷한 시기에 프랑스에서 대유행한 살롱과 비교하면 지적(知的) 교류·토론의 장소였다는 점은 같으나, 아무나 들어갈 수 없었던 귀족들의 장소였던 살롱과 달리 커피하우스는 단돈 1페니만 있으면 누구든지 입장이 가능한 장소였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였다. 

 올해 봄부터 학교에 가지 못하게 된, 그리고 갈 필요가 없어진 대학생들이 집 근처 커피숍을 학교 강의실처럼 삼아 수업을 진행하는 모습을 보니 옛 영국에서 유행했던 ‘페니 유니버시티’가 연상 작용을 일으켰다.  많은 학자들이 인간의 역사는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명확하게 구별이 이뤄질 것으로 예측한다. 그만큼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세계적 대재앙(Pandemic)으로 치닫고 있다. 일부 ‘장밋빛’ 논자들의 백신 개발 기대와는 별개로 우리(인간)는 깊은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팬데믹이 된 코로나19 사태는 산업혁명 이후 인간이 자연에게 가한 ‘몹쓸 짓’에 대한 준엄한 경고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대학 역사상 초유의 ‘비대면 수업’을 한 학기 동안 겪으면서 ‘페니 유니버시티’를 부활시켜 이 위기를 잘 이겨낸 대학생들에게 희망을 걸어 본다. 코로나19 ‘이후’의 인간으로 슬기롭게 살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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