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익 프리랜서
이상익 프리랜서

현재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은 아파트에 산다. 2019년 주거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아파트 거주 비율이 수도권 50.7%, 전국 50.1%에 이르고 있다. 거주 형태로 보면 공동주택인 아파트, 연립·다세대주택이 75%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가장 부유하다는 소득 9~10분위에 해당하는 최상위가구 중 76.6%가 아파트에 살고 있다.

작금 온 국토에 미증유의 아파트 광풍이 세차게 불고 있다. 지방은 수도권으로, 수도권은 서울로, 서울은 강남3구 또는 마·용·성(마포구·용산구·성동구)으로 이동하려는 국민적 열망이 남녀노소, 빈부격차를 불문하고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그 결과 전국 집값과 전셋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는 상황이다. 이를 바로잡겠다고 정부가 나서서 내놓은 부동산대책이 현 정부 출범 후 벌써 23개째다. 1.7개월 만에 한 개씩 대책을 발표한 셈이다. 역대 그 어느 정부보다 많은 대책을 내놓고 있다. 일개 조그마한 편의점이나 구멍가게 경영 전략도 이보다는 나을 듯싶다. 

더욱이 그 대책이라는 것이 온통 규제 일변도다. 보유세 및 거래세 인상, 종부세 인상, 공유지가 인상, 금융 대출 제한, 실질적인 거래허가제, 재건축 요건 강화, 아파트 고가 기준 제한 등등. 부동산시장의 수요와 공급이라는 자본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이 원활하게 작동되도록 유도하기보다는 오히려 시장 기능을 정지시키려는 데 목표를 두고 있는 듯하다. 부동산을 사지도, 팔지도, 보유하지도 말라는 무대책의 끝판 왕과 같은 현실이 벌어지고 있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부동산이라는 경제재 또는 삶의 터전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철학이 반시장적이라는 데 있다는 점이다. 접근 방법도 현실과는 한참 동떨어져 있다. 부동산도 엄연한 경제재, 투자 대상의 일종으로서 희소성과 수요공급의 원칙에 의해 시장가격이 결정된다는 기본 원리를 애써 부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얻어지는 차액은 엄연한 불로소득이고 이는 죄악으로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는 편향된 이념적 사고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고 본다. 비유컨대 자동차가 교차로에서 우측 등을 켜고 있으면서 실제 운전은 좌측으로 무리하게 진행하려는 모습이다. 

한편으로 일부 고위공직자들도 이에 편승해 강남 주택을 고집하는 이중적이고 모순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도 아이러니하다. 전형적인 내로남불의 씁쓸한 모습을 보는 듯하다. 또한 부동산 가격에 따른 자산 가격의 증가는 매도하기 전까지는 미실현 이익이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규제책으로 연이어 쏟아내고 있는 징벌적 과세는 자산(asset)과 현금의 흐름(cash flow)를 혼동하는 무지에서 비롯된다. 더욱이 불로소득 원천 징수라는 규제책으로 인해 사실상 자산 증가는 거의 없어지다시피 한다. 반면 소득이나 연금은 일정한데 급격히 인상된 각종 세금과 공과금 납부로 인해 가처분 소득이 감소하고 이는 고스란히 소비 감소로 이어진다. 결국 국가경제에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김현미 장관 거짓말’, ‘나라가 니거냐’, ‘문재인을 파면한다’, ‘민주당 독재당’이라는 구호가 성난 민심을 대변하는 키워드로 급부상하고 있다. 실제 부동산 소유주들과 임대인들이 거리로 나와 항의집회를 갖는 지경에 이르렀다. 전문가인 양 서민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즉흥적이고 게릴라식 정책 발표와 입법 추진이 그것이다. 충분한 정책 검토나 분석 없이 경쟁적이고 부분별한 규제책이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고 있다. 임대차 3법, 개발제한구역 해제, 용적률 제고, 강남·여의도 재건축 완화, 수도 및 공공기관 이전 같은 구상들을 중구난방으로 쏟아내고 있다. 사실상 책임회피성 국면전환용 정책으로밖에 비쳐지지 않고 있다. 

현재 전국적으로 불어닥친 부동산 가격 상승의 주범은 바로 정부 자신이다. 부실하고 설익은 부동산정책 발표로 국민들의 불안심리를 자극하고 한편으로는 좌절감을 안겨 주고 있다. 젊은 세대들에게 패닉바잉(panic buying) 현상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는 장본인이 바로 정부 당국자인 청와대, 국토교통부, 여당 국회의원, 여당 대표가 아니고 누구이겠는가? 모름지기 본래 선한 결과, 좋은 효과를 목표로 한다고 하더라도 민심을 거역하는 부동산정책이나 규제는 필연코 실패하기 마련이다. 정부가 현 부동산정책의 실패를 솔직히 인정하고 인적 쇄신을 통해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도 국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책무요, 의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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