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없던 시절 친구들과의 추억을 심어 줬던 건 ‘수인선’이었다."

70여 년간 수원시 고색동에서 살고 있는 심경섭(75)씨의 수인선에 대한 첫인상은 ‘전쟁을 버틴 철로’다. 한국전쟁 이후 고색동으로 돌아온 뒤 그가 처음 본 철로는 초토화된 주변에 비해 비교적 온전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심 씨는 "고색역 주변에 있던 우리집은 불타 버렸지만 철도 노선은 온전했다"며 "비록 철도 주변에 불발탄이 깔려 있어 가까이 가지도 못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군인들이 불발탄을 모두 수거해 열차가 다니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수인선은 전후 어려운 생활을 이어가던 지역 아이들에게 추억을 심어 줬다. 그의 첫 수인선 탑승은 초등학교(당시 소학교) 3학년 때 이뤄졌다. 돈이 없던 그가 여름방학 동안 친구들과 함께 무임승차를 해 갯벌이 있는 화성 ‘야목역’까지 간 것은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심 씨는 "그때는 주변에 수영장이나 해수욕장 같은 물놀이 시설이 없어 갯벌에 게를 잡으러 자주 갔다"며 "수원으로 생선을 팔러 오는 아주머니들과 친해져 가끔 밥을 얻어먹기도 했다. 한번은 검표원에게 무임승차를 들키기 전 열차 앞뒤로 몰래 숨어다니다 걸린 적도 있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수원에서 인천까지 2시간이 넘게 걸릴 정도로 속도가 느린 협궤열차였던 수인선 주변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기도 했다. 열차가 느려 갑작스럽게 아이들이 선로 위에 나타나도 멈추는 게 가능했기 때문이다. 심 씨 역시 친구들과 함께 출발하는 열차를 따라다닌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심 씨의 수인선 이용은 결혼 후에도 계속됐다. 당시 화성시 비봉면에 있던 처갓집까지 가는 버스가 고색동까지 오지 않았다. 이에 매송면 ‘어천역’까지 열차를 타고 간 뒤 그곳에서 내려 비봉면 방면 버스로 갈아타 처가를 방문했다. 그는 "어천역으로 가는 길은 지형이 낮아 가끔 비가 오면 침수돼 열차가 멈춰 설 때도 있어 당황한 적도 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심 씨는 수인선이 25년 만인 12일 개통된다는 소식에 적자 운행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면서도 젊은 세대들에게 좋은 추억을 심어 주는 이동수단이 되길 바라고 있다. 이제는 도심이 돼 버린 수원을 떠나 소래포구 등 서해안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수인선이기 때문이다.

그는 "내 생전에 수인선이 다시 운행될까 생각했던 적도 있어 감개무량하다"며 "수인선이 도심 속 많은 사람들을 원하는 장소로 이동시켜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종현 기자 qwg@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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