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요즘 부동산과 관련한 민심 이반이 심상치 않다. 급등한 강남아파트 가격을 잡겠다고 시작한 ‘핀셋 규제’가 확산되며 ‘풍선효과’를 일으켜 많은 도시의 아파트 가격이 급등했다. 임차인 보호를 강화하겠다며 정부·여당 주도로 입법한 ‘임대차3법’도 부동산 시장 전반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최근에는 내 집 마련에 불안감을 느낀 20~30대까지 주택 구입에 나서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나섬)현상마저 나타나면서 주택 가격이 더욱 치솟고 있고, 전세 가격마저 크게 치솟았다. 

다세대·연립주택에까지 수요가 몰려 가격이 오르고 있고, 월세도 급등하고 있다. 서민을 보호하겠다는 ‘좋은 취지’로 펼쳤던 입법과 정책이 결과적으로 서민의 이익을 침해하는 ‘나쁜 결과’를 빚어낸 것이다. 일부에서는 좀 더 시간을 두고 효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그 폐해가 오래 지속될 우려가 크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국가의 모든 작용은 법과 관련돼 있다. ‘입법’은 법을 만드는 과정이고, ‘행정’은 법을 집행하는 과정이며, ‘사법’은 법으로 심판하는 과정이다. ‘입법’, ‘행정’, ‘사법’의 국가 작용이 모두 중요하지만, 특히 ‘입법’이 ‘행정’이나 ‘사법’보다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입법이 잘못되면 그에 따라 행정이나 사법도 잘못될 수밖에 없고, 행정이나 사법으로 잘못된 입법을 바로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입법 활동은 매우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입법 활동이 졸속으로 이뤄짐으로써 국민의 삶에 큰 폐해를 끼친 적이 적지 않다. 입법 활동을 수행할 때 참작해야 할 몇 가지 사항을 지적해 본다.

첫째, 가급적 일방적 졸속입법을 피해야 한다. 정부·여당 입장에서는 입법을 추진할 때 야당과 반대세력의 협조를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끈질기게 설득하고 협상해야 한다. 내 생각만이 옳다는 자세를 내려놓고 상대방 주장에도 타당한 측면이 있을 수 있다는 겸허한 자세로 입법 활동에 임해야 한다. 졸속입법의 대표적 사례로는 1996년 ‘노동법 날치기 파동’이 떠오른다. 김영삼 대통령 정부하에서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 주도로 노동법을 날치기 통과시켰다가 노동계 등의 엄청난 반발에 부딪쳐 큰 혼란을 겪다가 마침내 야당과 협의해 1997년 노동법을 재개정해야만 했었다(1996년 법을 아예 폐기하고 새로이 법을 제정하는 형식을 취했다). 

이후 우리나라는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겪게 되고 결국 정권마저 교체되는 결과에 이르게 됐다. 졸속입법 후과가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입법을 할 때에는 전문가 의견 조회, 입법예고, 공청회, 야당과 협의 등 많은 절차를 거쳐야 한다. 사전에 시뮬레이션도 해보고, 일부 지역을 대상으로 시범적으로 시행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절차의 공정성이 지켜질 때 내용의 공정성도 담보될 수 있다. 정부·여당만의 독주로 이뤄지는 입법은 매우 위험하다. 

둘째, 입법을 할 때에는 가급적 시행에 필요한 준비 기간을 충분히 둬야 하고 ‘경과조치’도 둬야 한다. 새로 법을 만들거나 기존의 법을 바꾸는 경우에는 질서의 변화를 초래하게 되므로 혼란이 발생하는 것을 최소화해야 하고 소급 적용 제한 등으로 기존의 이익에 대한 침해도 최소화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절한 경과조치를 둬야 한다. 통상 법이란 ‘질서 유지를 위한 강제규범’이라고 정의된다. 법이 질서를 유지하기는커녕 질서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

국민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부동산과 관련한 입법은 더욱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전세난이 임대차법 때문이 아니라고 하지만 이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정부·여당은 지금이라도 졸속입법의 과오에 대해 반성하고, 야당과 진지하게 협의해 기존 입법에 다시 손봐야 할 곳이 있는지 살펴서 필요하면 재개정에 나서야 한다. 1996년 노동법 파동도 1997년 노동법 재개정으로 수습됐음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체면을 따질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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