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 인천세원고 교감
전재학 인천세원고 교감

우리는 ‘각본 없는 드라마’라는 말을 사용한다. 예컨대 박진감이 넘치고 흥미진진한 TV쇼나 프로그램은 이 말을 남기곤 한다. 여기엔 진실성이 묻어 있고 깊은 신뢰감을 유발한다. 이른바 세간에 유행하는 ‘짜고 치는 고스톱’이란 오명과는 거리가 멀기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현실은 예측 불가능한 세상사로 인해 불안과 스트레스가 날로 증대되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측 가능한 사회를 꿈꾸며 그것이 삶의 현장과 연계되기를 소망하는지 모른다. 이는 안정을 추구하려는 인간의 생존 본능이 작동하는 결과라 믿는다. 그렇다면 우리의 교육은 어떠한가?

우리 교육은 TV의 어떤 장르와 비슷한가? 언뜻 보아도 우리 교육은 치밀한 대본으로 꾸며진 프로그램처럼 돼 가고 있다. 왜냐면 대본은 프로그램 참여자들을 수월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목적지가 주어지고 거기에 이르는 자세한 지도가 제시된다. 그래서 일련의 지시를 따르기만 하면 된다. 실제로 교육활동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행동과 대화는 예측 가능하고, 가장 큰 도전은 미리 주어진 대본(정보)을 암기하면 된다. 문제는 너무도 익숙한 방식이기에 참여자는 생각 없이 따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교육에서는 자율성과 창의성을 기반으로 하는 혁신학교에 대한 저항으로 나타난다. 아이러니하게도 즐겁게 배우면서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배움이 일어나는 교육에 대한 저항인 것이다.

하지만 현재 TV는 각종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점점 더 인기를 얻고 있다. 그야말로 정해진 대본 없이 현장에서 실제로 흥미진진하게 이뤄지는 것에 참여자뿐만 아니라 시청자들도 환호한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참여자들에게 더 큰 도전을 요구한다. 목적지는 있지만 지도도 없이 가야 할 대강의 방향만 제시된다. 그런 다음 다른 사람들과 협력해 목적지에 이르는 방법을 집단지성으로 알아내야 한다. 예컨대 ‘도전 지구탐험대’, ‘정글의 법칙’, ‘도시어부’, ‘삼시세끼’ 등 인기 프로그램을 보라. 여기엔 최소의 대본으로 무수한 도전을 통해 실패를 경험하고 집단지성으로 회복탄력성을 높여 나가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TV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은 대본에 의지하지 않는 프로그램 개발에 열중하고 있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킬본(Kilborn, 1994)의 정의에 따르면 "①개인이나 집단이 일상생활에서 겪은 실제 사건을 ②ENG나 홈비디오 카메라를 이용 ③극화하여 재구성하되 ④리얼리티 효과나 오락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요소를 가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추세는 이 네 가지 조건 가운데 일부만 충족시키더라도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 결과 우리는 ‘K-드라마’ ‘K-팝’ ‘K-무비’ ‘K-푸드’ ‘K-방역’ ‘K-에듀’ 등등 한류라는 이름을 걸고 세계 곳곳에 도전장을 내어 ‘시련은 있으나 실패는 없다’는 기업가 정신으로 비교적 좋은 호응을 얻고 있다. 이것이 과거처럼 대본에만 의지해 따른 결과라고 할 수 있을까? 

이제 우리의 교육도 리얼리티를 배제할 수 없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에는 ‘배우’가 없고 실제 인물, 실제 배경, 동기, 재능을 가진 다양한 개인이 있다.

오늘날의 학생은 디지털 원주민(Digital natives)이다. 그들에게는 자신을 다루는 교육이 필요하다. 암기 사항을 말해주는 대본은 필요 없다. 이들은 학교에서 발굴돼 자신의 쇼에서 주인공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들에게 일방적으로 더 나은 배우이자 바람직하다고 판단하는 유형으로 배역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수이자 발달심리학 전문가인 토드 로즈는 "우리는 그들이 있는 곳에 가서 그들을 만나고, 그들이 그들 자신일 수 있게 하며, 성공에는 오로지 한 가지 올바른 길이 있을 뿐이라는 신화를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제 우리의 교육은 좋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진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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