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드라마에서는 주인공 집에 장식된 영화 포스터를 흔히 볼 수 있었다. 당시에는 우표 수집처럼 영화 포스터를 모으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다. 20세기의 마지막 몇 년을 앞둔 그 시기, 영화의 첫인상이라 할 수 있는 포스터는 유달리 감각적이고 아름다웠다. 당시 인기 있던 포스터 중 하나가 바로 1993년도 영화 ‘피아노’다. 푸른 기운이 감도는 황량한 해변가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피아노 한 대와 그 곁을 지키는 모녀. 쓸쓸한 분위기와 함께 궁금증을 자아내는 이 영화의 섬세한 선율에 귀 기울여 보자.

19세기 말, 귀족 출신의 20대 미혼모 에이다는 아홉 살 난 딸과 함께 뉴질랜드로 보내진다. 스코틀랜드에서 배를 타고 먼 길을 항해한 까닭은 일면식도 없는 남자와 정략결혼을 했기 때문이다. 신대륙 개척에 혈안이 돼 있는 청교도인 스튜어트와 에이다는 첫 만남부터 삐걱거렸다. 남편은 처음 본 아내가 무척이나 왜소하다는 것이 그녀가 말을 못한다는 사실보다 더 눈이 띄었다. 스튜어트가 보기에 에이다는 척박한 땅에서 가정을 일굴 만큼 튼튼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살림살이를 옮기던 중 크고 무거운 피아노를 해변가에 방치하기로 한 스튜어트의 결정에 에이다도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다. 피아노는 에이다에게 악기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거대한 그랜드피아노는 그녀의 고결한 신분의 상징인 동시에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에이다가 자유롭게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출구였다. 자신에게는 분신과도 같은 피아노가 남편에게는 무겁고 쓸데없는 짐짝일 뿐이었다. 

신혼집에 도착해서도 해변가의 피아노 생각뿐인 에이다를 이해하는 사람은 그녀의 어린 딸과 낯선 땅에서 만난 베인스였다. 영국인이지만 원주민 언어를 구사하고 그들에게 동화돼 마오리족 문신을 얼굴에 새긴 이 남자는 험악해 보이지만 타인의 감정에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남편에게 이해받지 못한 에이다는 자신을 깊이 이해해 주는 베인스와 피아노를 매개로 사랑에 빠진다.

영화 ‘피아노’는 남성 중심적인 보수적 사회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여성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작품이다. 19세기의 엄격하고 가부장적인 문화는 답답한 코르셋처럼 에이다를 짓누른다. 말을 못하는 설정은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낼 수 없었던 당시 여성의 모습을 상징한다. 내가 누구인지, 내 삶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결정할 수 없었던 에이다는 이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큰 희생을 치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뜻을 관철시킨 에이다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던 남편에게서 벗어나 행복한 새 삶을 개척한다. 또한 피아노를 통해 간접적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을 버리고 언어를 익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주체적인 인격체로 성장한다.

영화 ‘피아노’는 비단 여성의 성장만이 아닌 진정한 자신으로 재탄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알을 깨야만 하는 우리 모두를 응원하는 작품이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