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 인천시 서구청장
이재현 인천시 서구청장

더불어 사는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취약계층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있어야 하고, 꾸준한 배려가 동반돼야 한다. 조금 더딜지라도 함께 가도록 기다리고 보폭을 맞추는 것 또한 중요하다. 

 최근 방문한 사회적기업 한국근로장애인진흥회는 이 힘들고도 어려운 길을 10년 넘게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윤기상 대표가 이끄는 이곳은 전체 직원 중 무려 90%가 장애인을 비롯해 어르신, 다문화 등 취약계층이다. 취약계층 비율이 다른 사회적기업 대비 월등히 높다. 지금은 직원이 98명에 달하지만 2010년 설립 당시만 해도 7명에 불과했다. 

 복사용지를 생산하고 판매하면서 ‘나눔은 곧 일자리’란 신념 아래 수익을 낼 때마다 취약계층을 충원했다. 법원용 특수용지 납품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발굴한 이유도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꾸준히 기술을 보완하고 판로를 개척하면서 사람을 늘리고, 사업장을 넓혔다. 

 ‘기다림’이란 단어가 이곳에선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장애인들이 낯선 곳에서 일을 시작하다 보면 긴장한 탓에 얼어있는데다 실수도 잦기 마련이다. 비장애인 시각에서 바라보면 당연히 더디게 느껴지고 답답함도 있을 터. 하지만 이곳에선 이 모든 과정에 있어 기다림이 당연시된다. 

 최소 1~2개월은 장애인들이 스스로 적응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워준다. 생산성은 다소 떨어지지만 이러한 기다림을 통해 한 명의 장애인이라도 더 챙기고, 함께 나아가면서 소중한 사회적가치를 만들어나간다. 중증 장애인의 경우엔 6개월까지도 기다려준다. 이들을 위한 배려는 이뿐 아니다. 개개인의 특성과 능력치를 파악해 최대한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맞춤형 일자리를 제공한다. 무거운 박스를 계속 올리고 내려야 하는 업종 특성을 반영, 편리한 상하차를 위해 자동 적재기를 직접 개발하고 특허도 냈다. 

 사람을 줄이는 자동화가 아닌, 사람을 편리하게 자동화인 셈이다. 사람이 할 일과 기계가 할 일을 공정에 융합시킨 점 또한 놀랍다. 공정도 남다르다. 대개의 제조공장은 공정이 일직선으로 쭉 이어지기 마련인데 이곳은 반원형으로 돼 있다. 동선을 최대한 편리하게 조정한 것으로 이것 역시 사회적기업 맞춤형 공정이라 할 수 있다. 둘러보면 볼수록 작은 요소 하나하나에도 세심함이 돋보인다. 

 그 덕분일까? 직원들의 표정이 신기하리만치 밝다. 언뜻 보기엔 계속 반복되는 공정이라 재미가 없을 법한데도 내내 웃음이 배어 있다. 일하는 게 힘들진 않냐고 물어봤더니 ‘이곳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주고 작업환경을 다 맞춰주고 배려해준다. 자존감이 높아질 뿐더러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지금은 행복이 넘친다’는 놀라운 대답이 돌아왔다. 

 그 중요 매개체가 바로 기다림이다. 그 안에서 따뜻함이 자라고 사회적가치가 커져간다. 장애인들이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겠단 윤기상 대표의 의지 역시 결연하다. 

 우리 서구에 이러한 사회적기업이 있음에 뿌듯하고, 우직한 기업 철학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한국근로장애인진흥회를 보면서 진정한 사회적가치가 무엇인지, 취약계층과 비장애인이 모두 함께 잘사는 사회를 어떻게 꾸려가야 할지에 대해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일상생활에서 이뤄지는 소비와 관련해서도 사회적가치를 만들어가는 기업 물품을 구매하면 그게 바로 착한 소비가 아닐까. 결국엔 사회적가치를 함께 채워나가는 행위인 셈이다. 지역화폐 서로e음 플랫폼에 사회적기업 판매코너를 별도로 마련해 온라인 판매 물꼬도 트려고 한다. 

 이렇게 소비자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도 하나의 사회적가치다. 서구는 사회적경제마을지원센터를 활용한 맞춤형 컨설팅을 통해 사회적기업 11개소와 예비사회적기업 12개소를 추가 인증 및 지정하고 이들과 함께 모임을 시작, 민관 협력하에 상생의 의지를 다지고 있다. 지난해 인천권역 사회적경제 가치대상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저력을 바탕으로 사회적경제 가치인식 확산 교육에도 나선다. 무엇보다 사회적가치를 만들어내는 기업을 서구에서 적극 육성하고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자 한다. 

 사회적가치가 곳곳에서 꽃 피는 서구, 희망의 봄바람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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