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주지하다시피, 고대 그리스에서는 BC 6세기에 민주적 체제 유지에 위험한 인물을 투표로 결정해 5~10년간 국외에 추방하는 오스트라시즘(ostracism) 즉 도편추방제((陶片追放制)를 시행했었다. 당시 종이는 매우 귀하고 비쌌기 때문에 투표는 도기 파편이나 조가비 위에 추방 대상자의 이름을 쓰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오늘날 민주국가에서 운영하는 국민소환제(國民召喚制) 내지 주민소환제(住民召喚制)와 탄핵제도(彈劾制度)의 연원(淵源)이라고 생각된다. 

소환제도(recall)는 선출직 공무원 중에서 유권자들이 부적격하다고 생각하는 자를 임기 만료 전에 투표에 의해 해임하는 제도이고, 탄핵제도(impeachment)는 일반적인 사법절차·징계절차에 따라 소추하거나 징계하기가 곤란한 고위 공무원이 중대한 비위를 범한 경우에 의회가 소추해 처벌하거나 파면하는 제도를 말한다.

지난 4일 국회는 ‘법관(임성근) 탄핵소추안’을 상정해 재석의원 288명 중 179명의 찬성으로 가결했다. 법관에 대한 탄핵 소추는 처음이다.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 재판 등에 개입했다는 의혹 등으로 탄핵 대상이 됐다. 이에 대해 ‘당연한 결말(응분의 책임)’이라는 반응이 있는 반면 ‘사법부 길들이기’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여당에서는 ‘삼권분립 작동’이라고 하고, 야당에서는 ‘삼권분립 훼손(사법부 붕괴)’이라고 비판한다. 

어떤 주장이 타당한 것일까? 양쪽 주장 모두 수긍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본다. 생각건대, 탄핵제도의 기본취지는 민주주의 수호·유지를 위한 자기방어(自己防禦)에 있다고 본다. 즉, 그리스의 오스트라시즘에서 보듯이 민주주의 체제에 위해(危害)가 되는 위험 인물을 공직에서 제거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삼권분립 이론은 국가권력의 작용을 입법·행정·사법의 셋으로 나눠, 각각 별개 기관에 이것을 분담시켜 상호 간 견제·균형을 유지시킴으로써 국가권력의 집중·남용을 방지하려는 통치 조직 원리로서, 프랑스의 몽테스키외가 1748년 자신의 저서인 「법의 정신」에서 주창한 이론이다(영국의 존 로크가 주장한 ‘이권분립이론(입법권과 집행권의 분립)’을 발전시켰다). 

이처럼 연혁적으로나 제도 취지상으로 볼 때 탄핵제도와 삼권분립은 논리적 연관성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요컨대, 고위공무원인 어느 한 법관 개인의 위법한 일탈행위를 제재하기 위한 탄핵 소추를 두고 이를 ‘삼권분립 훼손’이라고 공격하는 것은 좀 과도하다. 탄핵제도의 본질상 위법행위를 저지른 법관 ‘개인’에 대한 징벌 차원이지 ‘기관’으로서 사법부를 징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즉, 민주주의와 국민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국회가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 해야 할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지 ‘삼권분립의 한 축인 입법부로서’ 사법부를 견제(통제)하기 위한 것으로 볼 것은 아니다. 이제 국민의 관심은 헌법재판소가 어떤 결론을 내놓을지에 쏠리고 있다. 임 판사의 임기가 2월 말에 만료되므로(시간 부족으로 인해 2월 말 안에 헌재 결정이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다), 헌재가 ‘소의 이익’이 없다는 이유로 ‘각하(却下)’할 것이라는 예상이 일부 나오고 있다. 

그러나 헌법적 측면에서 볼 때 이 사안은 임기만료에도 불구하고 헌재가 실체적으로 판단해야 할 여러 가지 필요·충분한 이유(탄핵제도의 실효성 등)가 있다고 본다. 덧붙여서, 만일 임기만료 또는 사직으로 직을 물러났다고 해서 ‘각하’하게 된다면, 임 판사는 탄핵을 통한 ‘파면’을 피하게 돼 퇴직급여 수령, 변호사직 수행 등 불이익을 전혀 받지 않게 된다(헌법규정의 무력화(無力化)). 

이는 무죄방면(無罪放免)하는 결과가 될 것이고, 이것이 선례가 돼 향후 탄핵 소추의 대상이 되는 자는 미리 사직함으로써 불이익을 피하려 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헌재는 이 사건을 각하할 것이 아니라 내용을 엄밀히 살펴 인용(認容)이 됐든 기각(棄却)이 됐든 공정한 판단을 내놓음으로써 헌법 수호의 보루(堡壘)로서 본령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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