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 인천시 서구청장
이재현 인천시 서구청장

‘인천 서구’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 ‘어디에 있어요?’라고 되물어본다. 나도 그랬다. 3년 전, 팔자에 없는 선거에 나서면서 지도부터 펼쳐봤다. 참 묘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땅은 넓고 인구도 인천에서 많은데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했다. 소비 역시 대부분 관외에서 이뤄졌다. 서울은 21%, 경기는 45%, 인천은 53%인 역외소비율이 서구에선 대략 추산해도 60%가 넘었다.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비율도 월등히 높았다. 전체 기업체 중 82%에 달하는 소상공인(2만5천 곳)과 중소기업(7천 곳)이 서구에 몰려있었다. 

 문제는 이 모든 게 단절돼 있다는 거였다. 경제주체인 소비자는 이렇게 많은 생산자가 동네에 있다는 것을 알 리 없고, 생산자는 소비자를 만날 길이 없었다. 신도시와 원도심 간 양극화 역시 시급한 문제였다. 전부 제각각 흩어지고 단절된 답답한 상황이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연희동·심곡동·공촌동 상인협동조합인 연심회를 만나게 됐다. 국내 최초 지역주민 주도로 ‘우리동네 상품권’을 발행한 곳이다. 하지만 사용량은 지지부진했다. 전국의 지역화폐가 비슷한 실정이었다. 

 왜 거듭 실패하는지 실패 사례부터 분석했다. 지류형이라 신용카드 사용자에겐 불편한 점, 관(官) 주도이다 보니 출발 시기에만 반짝 효과가 나타나는 점, 지역화폐 사용처가 극히 일부인 점 등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 서구의 단절된 상황을 극복하고 똑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그 핵심을 ‘이음’으로 삼았다. 공급자와 수요자를 잇고, 생산자와 소비자를 잇고, 구민과 소상공인을 잇자는 의미였다. 지역화폐 이름도 서로e음이라고 지었다. 무엇보다 사용법이 편리하면서도 쉬워야 했다. 

 지역화폐를 처음 쓰는 새내기, 아직은 현금이 더 좋다는 어르신, 기존 신용카드 사용에 익숙한 청장년층을 모두 끌어들이기 위해 전자식 모바일 플랫폼 기반의 지역화폐를 선보였다. 그 기반이 될 플랫폼 시스템을 갖추는 것도 중요했다. 소프트웨어가 아무리 획기적이어도 이를 뒷받침할 하드웨어가 탄탄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었다. 여러 가지 플랫폼 시스템을 꼼꼼히 비교한 후, 인천e음 플랫폼을 기본적으로 이용하면서 서구만의 특색을 갖추기로 했다. 

 그다음엔 민의 참여를 이끌어내야 했다. 이음의 고리를 끈끈히 하고자 소상공인단체·시민단체·전문가가 참여하는 민관운영위원회를 꾸려 치열하게 논의하면서 현장에 적용 가능한 변화를 끊임없이 시도했다. 가맹점을 대상으로 지역화폐 사용법을 알려주는 지역 매니저를 비롯해 구민 홍보대사까지 다방면에 걸쳐 민 중심의 활동이 이어졌다. 급기야는 다 정해놓은 개시일까지 한 달 연기하면서 서로e음 동참에 심혈을 기울였다. 덕분에 공공온라인 쇼핑몰인 온리서구몰·냠냠서구몰과 전국 1호 공공배달 앱인 배달서구를 내세운 시즌2에 이어 기부 채널인 서로도움을 연계한 시즌3까지 주민과 함께하는 파생상품을 선보일 수 있었다. 

 전자식 도입을 통해 지역 내 99.8%에 달하는 BC카드 가맹점을 지역화폐 가맹점으로 연계하면서 가맹점 확보도 수월해졌다. 큰 화제를 모은 ‘10% 캐시백’ 지급은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기에 결정 직전까지도 잠 못 이룰 만큼 고민이 컸다. 하지만 입소문을 내고 서구의 정체성을 키우고 주민 자긍심을 높이는 ‘전국 1위 지역화폐’를 만들어내려면 파격적인 혜택이 제공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굉장히 보수적인 소비 패턴을 바꾸기 위한 특단의 조치였다. 그 결과, 놀랄 만한 일들이 일어났다. 

 출발부터 대박 조짐을 보였던 서로e음은 지난해 12월 ‘1조 원 고지’를 넘어서며 기초자치단체 최단 기간(19개월) 최고 발행액을 달성했다. 최근엔 가입자 수 40만 명을 넘기며 발급 가능 인구 10명 중 무려 8.3명이 사용하는 구민 카드이자 아이템으로 자리매김했다. 지역화폐의 새 역사를 써 내려가면서 서구의 1등 자랑거리이자 1등 브랜드인 동시에 1등 행복 마중물이 돼주고 있다. 주민분들에게서 ‘지역화폐가 있어서 참 살맛 나고 행복하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이음의 가치를 새삼 느낀다. 주민을 잇고 도시를 살리는 더 깊이 있는 이음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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