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활동에 대한 인식 미흡
그러나 여성사 연구의 진전은 역시 역사학계의 변화와 관련돼 나타났는데 기존의 정치사 중심에서 탈피해 다양한 형태의 사회사를 모색하는 방향에서 생활, 풍속, 심성 등 여러 분야가 의미를 갖게 되었고 여성을 역사연구의 주제로 삼는 것도 가능해졌다.
최근 우리사회의 여러 부분에서 눈에 띄게 활동하고 있는 많은 여성들을 접할 수 있다. 세계적인 프로골퍼나 음악 연주자 외에 과학이나 인문분야에서도 남성들 못지않게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여성들을 볼 수 있다. 더구나 지난 4월15일에 실시된 17대 국회의원 선거는 이러한 여성들의 정치적인 활동을 확인하는 결과를 가져왔으니 17대 총선 결과 총 299명 의원 중 여성이 39명으로 13%를 차지함으로써 5.9%(16명)에 불과했던 16대에 비하면 진일보한 것이고 아시아 평균치인 14.5%에 근접해 세계 60위 안에 들게 됐다는 사실에서 한동안 언론과 국민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그런데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과연 여성의 정치활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성장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하는 회의도 든다. 비례대표 여성의원 29명을 제외한 선거지역 16곳의 여성당선자 9명의 전국적인 분포를 보면 서울(3), 부산(1), 대구(1), 경기(4) 등 대도시 정도이고 나머지 지역은 전무하다. 이것은 16대에도 마찬가지였는데 서울(3), 대구(1), 광주(1) 외에는 배출하지 못했다. 이러한 현상은 아직도 대학교수 채용에서나 대기업 간부직, 여성공무원의 상위직 진출에서 같은 조건의 남성보다 뒤쳐져 있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에 대한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정 내에서나 특정분야에서의 여성의 눈부신 활동과는 달리 아직 여성들의 정치나 사회활동에 대한 인식은 크게 발전되었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일찍이 김부식이 `삼국사기' 선덕여왕(善德王)조 사론(史論)에 “하늘로 말하면 양(陽)은 강(剛)하고 음(陰)은 유(柔)하며, 사람으로 말하면 남자는 높고 여자는 낮거늘 어찌 노구로 규방에서 나와 국가의 정사를 재단케 하리요. 신라는 여자를 추대하여 왕위를 잇게 하였으니 진실로 난세의 일이며, 이러고서 나라가 망하지 아니한 것은 다행하다 할 것이다...”라고 하며 여왕의 정치활동을 서경(書經)에서 말하는 빈계지신(牝鷄之晨)에 비유, 소위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부정적 인식을 표현한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사회활동에 대해서는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고 있기도 하다.
여성에 대한 객관적 평가 이뤄져야
점차 평생교육의 기회가 많아짐으로써 여성들의 의식도 다양하게 발전하고 또 수적으로도 여성유권자가 늘어나는 등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인위적으로나마 여성들의 정치활동을 장려하고 정책적으로 여성들의 사회활동을 지원하는 여러 시책들이 마련되고 있음은 다행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자칫 이러한 정책에 의해 계량화된 수치에만 사로잡혀 그 내면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객관적인 여성의 역사를 남길 수 없을 것이다.
흔히 `인류의 반은 여성'이라고 한다. 이것은 단지 수의 문제가 아니다. 동반자로서의 여성의 자리를 재평가하자는 것이다. 남녀 양성의 협조가 없었다면 아마 인류의 역사는 존재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동안 역사의 조명은 한 쪽만을 비추고 다른 쪽은 소외되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이제는 그 조명을 나머지 한쪽에도 비추어 보자는 것이다. 차별이냐 역차별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객관적인 여성의 역사를 기록하고 평가해 보자는 것이다. 역사의 미래는 여성에 대한 이러한 객관적인 평가에 의해 전개될 것이다.
강옥엽 인천시 역사자료관 역사문화연구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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