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어린 새 한 마리를 데려다가 병에 넣어 길렀다. 이제 너무 자라서 꺼낼 수가 없다. 그냥 두면 더 커져서 죽을 거고, 병도 깰 수 없다. 말해 보라. 새도 살리고 병도 깨지 말아야 한다. 너희가 늦게 말하면 말할수록 새는 빨리 죽게 된다. 말해봐라."

「재미있고 신나는 웃음 백서」(유머연구회 저)에 나오는 이 화두는 큰스님이 제자들의 학문의 깊이를 알아보고자 던진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아무리 고민해도 답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가위로 자르면 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난감해하는 제자들에게 스님은 이렇게 일러 줬습니다. "페트병이었느니라. 관세음보살!"

아! 병이 아니라 페트병이었습니다. 배우면 배울수록, 경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자연스럽게 고정관념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것이 기준이 돼 세상을 판단합니다. 그런데 깨달음이란 그런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공부가 필요한 것이겠지요. 깨달음을 찾겠다고 절에 와서 오랫동안 공부한 제자들이지만 ‘병은 ‘유리로 만든다’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겁니다. 

이런 이유로 우등생이 연애하면 "공부를 잘하니까 연애도 잘하네"라고 칭찬하지만, 열등생이 연애하면 "저러니 공부를 못하지"라고 비난합니다. 이렇게 고정관념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어서 성장을 가로막고 갈등을 부추깁니다. 나이가 들수록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삶의 방식이 굳어져 갑니다. 문제는 자신도 모르게 그 방식을 남에게 강요한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장용철 시인은 지혜 하나를 전해줍니다. 

"개구리는 연못이 운동장이고, 올빼미는 밤이 낮이고, 지렁이는 땅속이 갑갑하지 않습니다. 상대의 입장에서 헤아릴 때 닫혔던 문도 열리고 함께 사는 길도 열립니다."

그랬습니다. 비록 내가 사람이지만 개구리의 입장이 돼 개구리를 헤아려 보는 것이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혜였던 겁니다. 시인의 ‘개에게 우유를 먹이는 방법’이란 글에서도 같은 배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개에게 우유가 좋다는 말을 듣고 개를 붙잡고 앉아 우유를 먹였다. 억지로 우유를 먹일 때마다 개는 싫다고 몸부림쳤다. 어느 날, 개가 실수로 우유 통을 넘어뜨려 바닥에 엎지르고 말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개가 다가와 핥아 먹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그제야 개가 우유를 싫어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방법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의 판단만으로 일방적으로 베푸는 것은 애정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닌, 상대가 원하는 방식으로 베풀어 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진정한 사랑을 나누는 것이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상대가 원하는 방식을 알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 그리고 정성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특히 신앙이 다른 사람들 사이의 갈등이나 불신은 치유가 힘들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성공하는 사람들의 유머 테크」(이상근 저)에 나오는 성철 스님과 어느 목사님과의 일화에서 그런 기우를 날려버릴 수 있었습니다. 

"성철 스님을 만나려면 누구든지 삼천 배를 해야 했다. 어느 날 목사님이 스님을 뵈러 왔다. 하지만 ‘날 만나려면 아무리 목사라도 불전에 삼천 배를 해야 된다’라고 고집을 부려서 목사님은 난처해졌다. ‘신도들에게 우상 숭배를 하지 말라고 그렇게 가르쳤는데’라면서. 그러자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하나님을 미워하고 예수교를 싫어한 나를 제일 먼저 천당에 가게 해 달라고 축원을 하면서 절을 해 보시구려.’ 목사님은 즐거운 마음으로 삼천 배를 하고 스님과 대화했다."

이 글을 접하면서 목사님도 대단하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삼천 배를 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신앙도 지킨 비결은 바로 상대편의 입장을 헤아리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태도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새도 살리고 병도 깨뜨리지 않는 지혜로 이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