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 인천시 서구청장
이재현 인천시 서구청장

지금으로부터 10년도 더 된 얘기다. 환경부 재직 시절인 2010년 12월,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제16차 당사국 총회(COP16)에 정부 대표단으로 참여하게 됐다. 사실 이 회의는 인류 사회 존속과 직결된 환경과 관련해 ‘하루빨리 보존해야 한다’와 ‘당분간은 개발이 먼저’라는 국가 간 의견이 첨예한 갈등을 겪는 장이다. 

뚜렷한 해답을 찾지 못하는 사이에 지구는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전에 없던 현상이 일어나는 중이다. 충북 제천의 한 농원은 몇 해 전 한라봉, 천혜향 등 만감류 수확에 성공했다. 겨울철 추위가 매섭기로 유명해 ‘제베리아(제천+시베리아)’로 불리는 이곳의 이례적인 풍경은 재배 기술이 향상된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지구 온난화 영향이 크다. 대구·경북이 주산지인 사과 역시 강원도의 생산량이 늘고 있다. 기후변화가 한국의 농업 지도를 새로 그려가는 셈이다. 

이 아이러니한 현상을 접하면서 COP16 참석 당시 들렀던 코스타리카를 떠올려본다. 중남미에 위치한 코스타리카는 ‘커피의 나라’이자 영화 ‘쥬라기 공원’의 배경으로 유명하다. 국토의 23%가 국립공원을 포함한 보호 지역이며, 도시 외곽에는 울창한 원시림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단위 면적당 생물 다양성이 세계 2위인 글로벌 대표 생태 관광지이기도 하다. 생태 면에서는 최고지만 코스타리카는 지정학적 위치상 주변국들이 온통 내전에 시달리거나 군부가 통치하는 나라라 언제든 전쟁에 휘말릴 수 있었다. 대개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든 군대를 늘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코스타리카는 달랐다. 과감하게 군비 증강 대신 생태보호를 선택했다. 오히려 세계 최초로 군대를 폐지하기까지 했는데 환경을 살리기 위한 대결단이었단 말이 나온다. 이후 ‘적극적 영구 비무장 중립 선언’을 통해 진정한 민주주의를 토대 삼아 인권 선진국까지 달성했다. 군대를 버리고 생태와 평화를 얻은 거다. 국방비는 전체 지출의 0.6%에 불과하다. 대신 생태가치 보존에 전력을 쏟는다. 이곳도 한때 무분별한 산림 벌목이 이어지면서 국가 영토의 70% 이상을 차지했던 숲이 30% 수준으로 급격히 줄었다. 이에 정부가 나서 산림 소유주에게 5년간 국가 보조금을 지원하는 ‘산림환경서비스 지불제’를 시행, 사유지에 대해서도 환경보호가 이뤄지게끔 했다. 적극적인 산림보호정책으로 불법 벌목 행위를 종식시켰고, 국토 대비 산림 비율을 50%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군대 폐지만큼이나 놀라운 결단은 또 있다. 2004년 석유를 발견했지만 개발은 하지 않는다. 전력 생산의 96%가 재생에너지일 정도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강력하게 난개발을 금지하며, 이를 총괄하는 환경부의 힘이 가장 센 나라이기도 하다. 탄소 실질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탄소중립국 역시 일찌감치 선언했다. 올해가 목표로 했던 그 해로 어떤 결과를 선보일지 귀추가 주목된다. ‘화석연료 사용을 완전히 종식하는 최초의 나라 중 하나가 될 것’이란 카를로스 알바라도 대통령의 취임사 역시 인상적이었다. 

이에 반해 대한민국의 이산화탄소 배출 증가량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1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세계 7위다. 더는 환경을 뒷전으로 미룰 수 없는 엄중한 상황을 맞아 정부는 지난해 12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린뉴딜로 저탄소 녹색성장을 이끈다는 계획도 세웠다. 인천시 역시 2025년 수도권매립지 종료와 함께 친환경 자원순환을 통해 환경특별시로 나아가겠다는 다짐을 밝혔다. 인천 서구도 클린 서구를 내세워 열악한 환경을 개선해 나가는 것과 동시에 환경부가 추진하는 스마트 그린도시 선정에 힘입어 감량과 재활용에 기반한 자원순환 선도도시를 힘차게 열어내고 있다. 다양한 인프라를 기반으로 친환경 에너지원인 수소사회 실현에도 앞장선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물려줄 단 하나의 보물은 온실가스로 뒤덮여 온갖 질병에 찌든 회색 지구가 아닌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살아 숨 쉬는 녹색 지구임을 잊지 말자. 면적도 인구도 국내총생산(GDP)도 변변치 않은 코스타리카가 가장 행복한 국가가 된 결정적 한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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