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왕 조용필이 1972년 발표한 노래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으로 시작한다. 엘레지의 여왕인 이미자의 대표곡 ‘동백 아가씨’는 말 못할 사연을 가슴에 품고 그리운 님을 기다리다 울다 지친 여인을 빨갛게 멍이 든 동백꽃에 비유했다. 하춘화가 리메이크한 ‘아리랑 목동’에서도 동백꽃이 제 아무리 고와도 사랑하는 내 님만은 못하다는 가사가 나온다. 이처럼 우리 대중가요에 심심찮게 언급된 동백꽃은 서양의 예술작품에서도 사랑받는 소재다. 

한국·일본·중국 등 동아시아를 원산으로 하는 동백나무는 18세기 후반 선교사 카멜에 의해 유럽으로 전파됐고, 이후 프랑스의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의 소설 「동백꽃 여인」의 큰 성공으로 꽃의 인기도 높아졌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품 브랜드 샤넬의 심벌도 카밀리아, 즉 동백꽃이다. 동백꽃은 다른 꽃나무 묘목과는 달리 추운 겨울에 개화하는 것이 특징이다. 흰 설경 속에 붉게 피어나는 동백은 차디찬 환경을 뚫고 만개한다는 점에서 열정과 처연함의 정서를 동시에 자아내고 있다. ‘애타는 사랑’이라는 꽃말을 반영한 1936년작 ‘춘희’는 뒤마 피스 원작의 「동백꽃 여인」을 각색한 영화다.

귀족 출신은 아니지만 누구보다 기품 있고 우아한 마그리트는 뭇 남성들의 로망이다. 동백꽃을 좋아해 동백꽃 여인이란 별칭으로도 불리는 그녀는 돈 많은 백작의 후원으로 화려한 삶을 살아가지만 몸과 마음은 병들어 있다. 만인의 연인이지만 진실한 사랑은 기대할 수 없었고, 폐병 증상도 깊어져 나날이 창백해져 갔다. 

화류계의 여왕 마그리트에게 20대 청년 아르망은 그저 수많은 남성 중 한 명일 뿐 특별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르망은 온 마음으로 그녀를 사랑하고 걱정했다. 진심이 닿았을까! 마그리트도 방탕했던 지난 삶을 청산하고 아르망과의 소박하지만 행복한 미래를 꿈꾼다. 그러나 가장 행복한 순간 두 가지 비극이 들이닥친다. 사교계에 진 막대한 빚과 아르망 부모님의 반대에 직면한 것이다. 이에 마그리트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아르망과 이별한다.

병약하지만 아름다운 화류계 여성과 명예보다 사랑을 선택한 젊은 청년의 이뤄질 수 없는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통속 멜로극 ‘춘희’는 1930년대 최고의 스타 여배우 그레타 가르보의 열연으로 흥행에 성공한다. 원작이 그린 마그리트는 연약한 측면이 강조된 반면 가르보가 연기한 동백꽃 여인은 배우 특유의 중성적인 매력과 맞물려 자의식이 강한 여성의 이미지가 엿보인다. 가르보가 아니었다면 과거의 업보 속에 희생되는 여성의 가련함이 강조됐겠지만 영화에서는 자신이 떠나야 할 때를 알고 떠나는 결정권을 쥔 여성의 면모도 읽을 수 있다.

원작 소설가 뒤마 피스의 자전적 이야기가 녹아 있는 「동백꽃 여인」은 1854년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로 재탄생돼 누구보다 열렬히 사모하는 애달픈 남녀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오늘날까지 들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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