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지난 25일(현지시간) 배우 윤여정이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미나리’의 할머니 ‘순자’ 역으로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참 놀랍고도 축하할 일이다. 지난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비(非)영어 작품 최초로 작품상 등 4개 부문을 휩쓸었던 데 이어 한국 영화계가 연거푸 이뤄낸 쾌거에 아낌없는 갈채를 보낸다. 우리 문화·예술에 대한 자부심을 높여줬고, 특히나 코로나로 힘겨운 국민들에게 신선한 기쁨을 선사해 줘서 고맙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로부터 춤과 노래를 즐기는 민족이라는 말을 들어왔는데, 우리가 가진 특유의 문화·예술DNA가 이번에도 빛을 발한 듯하다. 한편, 배우 윤여정 수상 소감에 외신들이 찬사를 쏟아내고 있다. 지난 12일 영국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모든 상이 의미가 있지만 이번에 특히 ‘고상한 체한다(snobbish)’고 알려진 영국인들이 좋은 배우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특히 의미가 있고 영광이라며 농담을 던져 큰 웃음과 박수를 받았었는데, 이번에도 세계의 언론매체들이 그녀의 재치 있고 유머러스한 입담에 ‘빵 터졌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윤여정을 ‘최고의 수상 소감’을 한 수상자로 뽑으면서 "몹시도 딱딱했던 시상식에서 윤여정은 뜻밖의 선물이었다"고 칭찬했고, 시사잡지 애틀랜틱은 "두 아들이 나가서 일하라고 했다. 이 트로피는 엄마가 열심히 일한 결과다"라고 말한 윤여정의 말에 ‘너그러움과 유머가 배어 있다’고 평가했다.

영국의 더 타임스는 "윤여정은 올해 영화제 시상식 시즌에서 우리가 뽑은 공식 연설 챔피언"이라고 했고, BBC는 ‘브래드 피트에게서 어떤 냄새가 났느냐’는 다소 엉뚱한 질문에 "나는 냄새를 맡지 않았다. 난 개가 아니다"라고 응수한 것을 두고 "이번 시상식 최고의 멘트"라고 언급했다. 세계의 주목을 받은 이런 거침없는 ‘한국 할머니의 입담’은 우리 국민들의 ‘국보급’ 자랑이다. 평소 날선 공방과 악담을 주고받는 정치인들의 ‘언어폭탄’에 식상하고 짜증나던 국민들이 모처럼 깔깔대고 웃을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

배우 윤여정은 ‘싱글맘’, ‘워킹맘’으로서 녹록지 않은 인생을 살아왔다. 그녀는 수상 소감에서 "내가 당신들보다 좀 더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했지만, 그녀의 성실하고 열정 넘치는 55년 차의 연기 인생과 74세의 농익은 삶에 대한 보상으로 여겨진다. 사실 우리 사회에는 배우 윤여정에 못지않게 열심히 살아오신 어르신들이 많다. 그분들의 땀과 노력의 결과로 오늘날 우리나라가 세계 경제규모 10위 국가이자 문화강국을 이뤄냈다. 

굴곡진 역사 속에서 힘든 일들도 많았지만 우리 기성세대 어르신들의 강고한 의지와 부단한 노력이 그야말로 괄목할 만한 일들을 성취해냈다. 우리 사회가 빈부 양극화 등 살기 힘든 여건들을 아직도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짧은 역사 속에서 이만한 성취를 이뤄낸 것은 참 대단하다.

금년은 조선시대 후기인 1871년 4월 척화비(斥和碑)를 세운 지 150년이 되는 해이다. 이 비는 1866년(고종 3)의 병인양요(丙寅洋擾)와 1871년의 신미양요(辛未洋擾)를 치른 뒤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 1820~1898)이 쇄국(鎖國)의 결의를 굳히고 온 국민에게 외세의 침입을 경계하기 위해 서울을 비롯해 전국의 요소에 세운 것이다. 비석 표면에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서양 오랑캐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자는 것이요, 화친을 주장함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이라는 주문(主文)을 큰 글자로 새기고, "戒我萬年子孫 丙寅作 辛未立(우리들의 만대자손에게 경계하노라. 병인년에 짓고 신미년에 세우다)"이라고 작은 글자로 새겼다.

당시의 결연한 쇄국주의가 지금 생각해 보면 빙긋 웃음이 나는 일이지만, 어쨌거나 험난한 개화 물결과 역사의 파고를 넘어 고난을 이겨내고 오늘날 세계 속에 우뚝 선 위업을 이뤄내신 우리 선조들과 기성세대 어르신들께 감사한 마음이 든다. 배우 윤여정이 한국 영화사 102년에 이뤄낸 오스카상 수상이 이 땅의 많은 기성세대와 노인들께 격려가 되고 새로운 정진의 계기가 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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