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선 여주시의회 의장
박시선 여주시의회 의장

여주시에 많은 집단민원들이 발생하고 있다. 대부분 집단민원은 모두를 만족시키는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 차선책을 찾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그 과정이 순탄치 않다. 집단민원을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곧 정치력이고 능력이라고 볼 수도 있다. 많은 집단민원 중에서 처리 과정에 특히 아쉬움이 큰 SK천연가스발전소의 송전탑·지중화 논란을 짚어보고자 한다. 

SK발전소 관련 집단민원 경과는 대략 다음과 같다. 여주시의회는 2012년에 SK발전소 유치동의안을 가결했다. SK는 해당 지역 주민들의 동의를 받았다. SK측이 건설 진행 과정에서 송전선로 지중화 계획을 송전탑 가설로 변경 신청했다. 이를 계기로 주민들의 반대 운동 단체가 조직됐다. SK발전소의 설립 백지화 주장과 송전선로 지중화 주장이다. 

일부 시민단체들에 의해 제기된 백지화 주장은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 국가의 전력수급 계획에 의한 발전소 설립이 집단민원에 의해 백지화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송전선로를 지중화하라는 주장은 이해관계가 상충하면서 지역 내 갈등으로 비화했다. 지중화는 절대 안 된다는 주민과 송전탑이야말로 절대로 안 된다는 주민이 대립했다. 

송전탑을 반대하며 단식투쟁에 나선 주민이 있는가 하면, 일부 정치권도 송전탑 반대 의견을 표명하였다. 그러나 침묵하는 다수 주민은 송전탑 가설에 따른 SK측의 보상조치에 관심이 더 많은 듯이 보였다. 송전선로 건설 논란이 잠잠하더니, 올해 들어 대신면과 북내면의 이장협의회 및 사회단체장들이 송전선로 논란의 조속한 해결을 요구했다. 

여주시의회와 여주시청에 민원을 접수하고 여주시의 합리적인 행정조치를 촉구한 것이다. 송전탑 반대 주민들은 이장들과 사회단체장들의 움직임이 송전탑 찬성이라고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소수이지만, 목소리가 큰 반대 주장을 의식했는지 여주시는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여주시가 수수방관하는 사이, SK는 최근 공식적으로 지중화 매설 계획을 확정지었다. 

다음의 세 가지 우려가 나타나고 있다. 첫째, 송전탑 건설은 유해하다고 한다. 그런데 지중화가 무해하다는 증거도 딱히 제시되지 않는다. 송전선로가 지중에 매설될 경우 주민 생활에, 환경에 송전탑 못지않게 유해할 수도 있다고 걱정하는 주민들도 있다. 지중화 주장을 관철하기는 했는데, 혹시 문제가 생기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지중화를 강력히 주장한 측에서 책임질 것인가? 걱정되는 대목이다. 

둘째, 송전탑·지중화 논란에서 진정 다수의 의견은 무엇이었는지가 객관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해당 사안을 놓고 시민투표라도 해야 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크다. 몇 명이, 어떤 근거로, 반대하거나 찬성하는지 정확한 숫자를 검증해 봤어야 했던 건 아닐까? 소수의 의견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소수 때문에 다수의 의견이 묵살돼도 안되기 때문이다. 

셋째, 지나친 신중성은 나약한 행정이라는 부정적 인식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신중하다 보니 여주시의 의견은 없었다. 이장들과 사회단체장들은 일정 정도 주민의 대표성을 갖는다. 그들의 요구마저도 결과적으로는 충분히 검토되지 않았다. 여주시는 집단민원을 경청했다. 그러나 결국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여주시에 주어진 최소한의 권한을 지렛대로 활용해 대기업 집단인 SK와 담판을 지을 수도 있었다. 

지중화 주장은 관철됐다. 그러나 얻은 것 없이 분열과 대립은 아직 남아 있다. 혹시 지중화 반대가 시작되면 여주시는 어떤 입장에서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가? 여주시의회는 시민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그런데 철저히 다수결의 원칙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한 마리 양을 위해 아흔아홉 마리 양을 포기하는 소수자 보호 원칙을 따를 것인가? 원칙을 명확히 해야 한다. 

이번 일이 주는 교훈이 있다. 시는 자기 입장이 분명히 있어야 한다. 정책 집행에 과감해야 하고,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여주 전체를 위해서 이익이 된다면 주민 일부의 반대는 감수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의회야말로 뜻 결정에 신중해야 한다. 요컨대, 급한 것과 급하지 않은 것, 아주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 포기할 것과 강행할 것을 구분하는 혜안이 우리에게 필요한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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