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지난 3월 1일(현지시간) 미국은 자국 내에 구금 중이던 마이클 테일러(59)와 그의 아들 피터(27)의 신병을 일본으로 넘겼다. 이들 미국인 부자(父子)는 보수 축소 신고, 횡령 등 개인비리 혐의로 일본 검찰에 의해 구속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난 상태였던 카를로스 곤 전 닛산자동차 회장을 2019년 12월 레바논으로 탈출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해 5월 미 당국에 의해 체포된 테일러 부자는 곤 전 회장의 탈출로 망신을 당한 일본 검찰이 부당하게 자신들을 기소한 것이라며 일본에서 재판받기를 거부했다. 

특히 이들은 자신들이 일본 당국에 넘겨질 경우 신체 및 정신적 고문을 받을 수도 있다는 주장을 했지만, 미 보스턴 연방법원이 이를 기각하면서 일본행이 확정됐다. 이제 이들에 대한 재판 절차가 일본 법원에서 진행 중이고 마땅한 처벌을 받게 된다. 한편, 도쿄 지방검찰청은 이들 두 사람 외에 곤 전 회장에 대해서도 체포·구속을 추진 중이지만, 레바논 정부는 그의 레바논 체류에 법적 문제가 없다며 현재까지 인도를 거부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곤 전 회장의 신병을 인도받기 위해 법적·외교적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어느 나라에서건 검찰권 행사와 법 집행의 엄정성은 범인이 국내에 있든 외국에 체류 중이든 상관없이 철저히 지켜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검찰권 행사와 법 집행 엄정성은 국내에서는 서슬이 시퍼렇지만 외국에 체류 중인 범인에 대해서는 ‘종이 호랑이’로 비쳐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으로 피신한 조현천 전 국군기무사령관에 대한 체포 불발의 건이다. 

그에 대한 수사 진행 소식은 수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감감하다. 그의 미국 내 체류 및 근황 등이 언론에 간간이 보도된 적도 있지만, 수사 진행에 대한 소식은 전혀 들리지 않는다. 우리나라 검찰이 그를 법정에 세울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지난 4월 26일 김무성 전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대표는 언론 인터뷰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당시 헌재에서 탄핵 심판이 기각될 거로 봤다"며 "기각되면 광화문광장이 폭발할 테니 기무사령관에게 계엄령 검토를 지시한 것"이라고 탄핵 정국 당시를 회고했다. 

종래 언론과 국민들 사이에 제기돼 온 ‘계엄령 검토 지시’ 의혹이 당시 여당 최고위 인사의 입을 통해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광화문이 자칫 제2의 광주 금남로, 미얀마가 될 뻔한 일이 구체적으로 지시되고 계획·진행 중이었다니 놀랍기 그지없다. 등골이 오싹해지고 소름마저 돋는다.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의 계엄령 문건 작성 의혹을 수사했던 군·검 합동수사단은 핵심 피의자인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의 소재 파악을 하지 못해 2018년 11월 기소중지 처분을 내렸다. 

기소중지는 피의자나 참고인이 소재 불명 등의 이유로 수사를 일시 중단하는 결정이다.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에 대한 수사는 대한민국의 수사기관의 명예와 위신이 달린 문제이다. 국사범(國事犯)을 잡아들이지 못하고 세상에 그대로 방치한다는 것은 수사기관의 존재 이유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제기한다. 국가의 체면도 말이 아니다. 이 사건 해결을 위해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검찰 조직이 과연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새삼 궁금해진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나라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가 출범했다. 또 조만간 새로운 검찰총장이 임명될 예정이다. 계엄령 문건 작성 의혹 사건은 검찰, 공수처, 국가수사본부 등 수사기관이 최선의 역량 발휘를 통해 그 명운을 걸고 최우선적으로 파헤쳐야 할 과제이다. 가급적 2022년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기 전에 문재인 정부하에서 의혹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지길 기대한다. 

요즘 항간에서 일부 거론되는 사면론, 개헌론에 신경 쓸 바가 전혀 아니다.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에 대한 추상같은 법 집행이야말로 우리나라에서 다시는 ‘계엄령’이 남용·재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일차적인 예방책이다. 우리나라에서 자칫 ‘미얀마 사태’와 같은 참극이 발발할 수 있다는 개연성을 일부라도 남겨 둬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에 대한 끔찍스러운 위협 요인을 철저히 제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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